기업이나 기관의 '고객매거진'은 브랜드 미디어(Brand Media)의 일환으로 기업(관)이 목표 고객과 소통하고 브랜드 인지도, 신뢰도, 충성도를 강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전통적이고도 강력한 매체다.
일반적으로 '사외보'라고 불리던 고객매거진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웹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매거진, 영상 매거진 등 다양해진 플랫폼을 기반으로 계속 진화를 하고 있다. 이전 종이책에서 반송엽서를 통해 받던 고객의 피드백은 실시간 상호작용으로 바뀌었고, 성별, 연령별 등 타깃을 세분화하여 서로 다른 콘텐츠를 발송할 수 있게 되었다. 제약은 줄고 표현의 범위는 넓어졌다. 하지만 그 효과 또한 비약적으로 커졌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뷰티 매거진 '향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 고객 매거진이다. 1958년 '화장계'라는 제호로 당시에는 생소했던 패션 경향과 문화, 해외 소식 등을 전하기 시작해 1973년 '향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다.
향장은 전성기에 매호 150만 부를 인쇄해 당시 국내 잡지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발행부수를 기록(1995년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했고, 헌책방에서 과월호를 팔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향장은 화장품 방문판매원, 매장, 미용실 등의 경로로 배포되어 시골 동네에 가도 한 권쯤은 눈에 띄는 책자였다. 향장은 기업의 사외보를 넘어 과거 한국 뷰티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선도한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향장이 거둔 성과는 대단했다. 아모레퍼시픽이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화장품 브랜드로서의 위치를 지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수많은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2002년 한국소비자학회의 논문에는 1990년대 아모레퍼시픽 제품 구매 고객의 70% 이상이 향장 독자였다는 분석이 게재되었다.
2025년 1월 통권 665호를 발간한 향장은 과거의 영광을 발판삼아 새로운 환경에 맞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일부 콘텐츠는 온라인 매거진과 유튜브 등으로 전환했고 디지털 버전(PDF/웹진)도 온라인으로 공개, 메일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향장의 아티스트릭 콘셉트를 반영한 시각적 콘텐츠(사진, 일러스트)와 이벤트를 공유한다. 유튜브에서도 향장과 연계한 비하인드 영상, 인터뷰, 브랜드 스토리 콘텐츠를 게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팝업 스토어, 문화행사 등에서 한정판을 제작하고 있으며, 화장품 한류에 힘입어 일부 콘텐츠를 영어·중문으로 제작해 해외 소비자와의 소통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에도 온라인과 SNS 상에서는 과거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수많은 미디어와 정보 콘텐츠 사이에서 경쟁해야 하는 환경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렇지만 인쇄판과의 콘텐츠 중복, 소셜미디어 전용 오리지널 기획 부족 등 기존 매체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파생하고 멀티 유스하는 형태 및 방법은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새로운 환경에 과감한 변화를 선택한 기업도 있다. DB손해보험은 오랫동안 발행해 오던 고객소식지 '프로미라이프'를 지난 2021년 인쇄 매체에서 소셜미디어 기반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보험회사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경제, 건강, 생활 정보라는 콘텐츠 기조에는 변화가 없지만 콘텐츠의 가공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소셜매거진 프로미라이프는 영상, 쇼츠, 카드뉴스, 모션그래픽 등 소셜미디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기획하고 제작한다.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푸쉬 형태로 제공되는 소셜매거진은 짧은 시간 안에 핵심 정보를 전달하여 관심을 유도하고, 보다 자세한 정보는 자사 사이트나 블로그로 접속을 유도한다. DB손해보험은 소셜 매거진 전환 이후 더 많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실제 전달률도 인쇄 매체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아예 새로운 매체를 만든 사례도 있다. 2023년 개설된 '매거진'은 CJ 올리브영 앱 내의 콘텐츠 서비스다. 뷰티 플랫폼인 올리브영의 에디터가 기획한 뷰티, 라이프스타일 관련 영상과 화보 등을 콘텐츠로 제공한다. 트렌드에 민감한 MZ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격이나 스펙을 설명하는 정보성 콘텐츠가 아닌, 즐거움과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선호하는 점에서 착안했다. '매거진'은 올리브영 앱을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 플랫폼이 아닌,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방문해 최신 뷰티 트렌드와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즐기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진화시켰다.
기존의 브랜드 자산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고 기존 고객과의 접점을 더 넓히기 위해서는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콘텐츠에서부터 형식까지 발행자의 관점이 아니라 수요자인 고객의 관점으로 변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플랫폼과 환경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박영락 한국인터넷소통협회 회장·더콘텐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