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56〉기술혁신을 위한 언어 사용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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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컴퓨터,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로 무장한 산업과 시장에선 연일 외래어, 축약어 등 새로운 언어가 생성되고 낡은 언어는 소멸한다. 언어는 기술혁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의견을 들어보자. 언어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인간의 그림이다. 그러니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고 했다. 말을 이용해 사람과 화물을 나르는 수레엔 '마차'라는 언어를 쓴다. 엔진이 장착되고 사람이 운전하는 운송도구가 나왔을 때 마차 대신 '자동차'라는 언어를 썼다. 자동차라는 새 이름을 부여하면 마차의 연장선을 벗어난다. 마차를 능가하는 신기술인지 명확하진 않았다. 너무 빨라 사고도 많았다. 자동차의 미래가치를 알 수 없기에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못하고 침묵해야 했을까. 그렇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견해를 슬쩍 바꾼다. 당장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 상상과 지식이 그것이다. 혁신을 갈망할 때엔 침묵하지 말고 언어로 만들어 표현해야 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언어를 습득하며 소통하고 활용해야 한다. 언어로 표현되는 '대상'이 발전하면 언어도 그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언어의 발전은 표현되는 대상의 내용과 수준을 다시 변화시킨다. 새로운 언어를 생성하고 낡은 언어를 소멸하며 표현되는 대상까지 변화시키는 선순환의 발전을 거듭한다. 자동차와 이름 모를 수많은 부품, 그리고 도로 교통의 생성과 발전이 그랬다.

그림작가 이소연 作그림작가 이소연 作

망치와 도끼는 모두 처음엔 단단한 돌에 불과했고 그저 '돌'이라고만 불렸다. 기술발전으로 모양과 기능이 분화되어 망치와 도끼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게 됐다. 고유의 언어가 생기면서 다양한 공구가 만들어지는 등 기술발전에 돌입했고 언어도 덩달아 발전했다. AI에이전트, 피지컬AI도 마찬가지다. AI라는 이름으로 같이 시작했지만 발전을 거듭해 현재의 AI에이전트, 피지컬AI라는 언어를 얻었다. 기술이 발전한 후에 자신의 언어를 갖게 된 걸까. 그렇지 않다. 단순지식, 연구개발 단계에서 미래를 상정해 가설을 세우고 AI에이전트, 피지컬AI 등 언어를 미리 붙여 사용하면서 혁신의 촉매제가 됐다.

국민의 권리의무를 설정하려면 법적 요건과 효과를 명확히 해야 한다. 법률언어의 정의와 경계가 중요한 이유다. 기술, 문화 등 시공간에선 어떨까. 기술 등의 호환성을 위해 같은 현상과 공간에서 같은 언어를 써야 한다. 그러나 언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나쁘지 않다. 낡은 언어에 갇히지 않으면 새롭고 다양한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자동차는 여객용, 화물용으로 분류되고 크기에 따라 중형, 소형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 자동차에 그친다. 자율주행 등 자동차가 발전하면 언젠가 자동차를 벗어난다. 운전자, 핸들, 바퀴가 없어지고 내부와 외관이 달라져도 자동차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동차의 본질을 바꾸고 싶을 때 어떤 언어를 써야 할까. 자동차라는 낡은 언어에 갇히면 자동차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언어가 경계를 넘어설 때에 혁신이 뒤따른다.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거나 발견할 때 새로운 언어를 부여할지, 어떤 언어가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 언어를 함께 할 생태계 규모와 범위도 중요하다.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존 매카시가 AI라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AI가 있었을까. 항공기 조종석의 많은 버튼은 비슷하지만 이름과 용도가 다르다. 새로운 기술과 현상에 언어를 부여할 때 미래가 태어난다. '말할 수 없는' 지식을 끊임없이 기술로 만들되 언어를 만들어 붙이자. 낡은 언어의 감옥에 갇히면 기술발전은 물론 산업이 죽고 혁신은 멈춘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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