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 트럼프에겐 ‘전리품’이 절실하다. 이달 초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포문을 열었다가 90일 미루고, 중국에만 145% 초고율 관세를 물리며 화력을 집중하는 중이다. 그런데 중국은 희토류 수출 금지 등의 조치로 맞서며 요지부동이다. 하루 전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상도 성과 없이 끝났다. 트럼프의 돌발 행동에 압박을 느꼈을 이시바 총리마저 “여전히 입장 차이가 있다. 이번 협상은 다음 단계를 위한 초석”이라고 한다. 이젠 트럼프 쪽이 오히려 안달복달이다.
▷다음 주 한미 무역협상을 시작하는 우리 정부로선 이런 장면을 미리 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협상단을 트럼프가 직접 만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수십 개국과 동시협상을 벌이는 미국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나라에 관세를 더 많이 깎아 주겠다’며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의 거친 기세에 휘말리면 엉뚱한 실수를 할 수 있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태도에는 대선에서 트럼프 편에 섰던 빅테크, 월스트리트의 거물들마저 부정적 태도로 속속 돌아서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관세정책이 미국의 국가 신뢰도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퇴임 후 침묵하던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그들은 확실히 뭔가를 망가뜨리고 있다. 총부터 먼저 쏘고 나중에 조준한다”며 설익은 정책들을 꼬집었다.▷한국엔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추가 조치들까지 부담이다. 중국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에 쓰이는 엔비디아 칩의 대중 수출이 막혀 이 칩에 들어가는 한국산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도 타격을 받게 됐다. 이래저래 힘든 상황이지만 한국은 조급함을 달래고 상대 패부터 확인해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선 언제나 성질 급한 쪽이 더 많은 걸 내주게 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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