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중도는 없다" 선거는 프레임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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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6·3 대통령 선거가 바싹 다가오면서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은 예외 없이 중도층·무당파 공략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지지 기반이 확고한 집토끼(핵심 지지층) 외에 산토끼(부동층)를 사로잡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중도 외연 확장 전술은 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여론조사기관들도 중도층·무당파 비율을 따로 집계해 정치 지형을 해석하곤 한다.

이미지 확대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후보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후보

하지만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중도층은 없다"고 단언했다. 유권자는 좌우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 프레임을 동시에 지닌 '이중개념 소유자'라는 것이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인간의 정치적 판단은 정책의 호불호가 아니라 도덕적 프레임에 기초한다. 보수적 프레임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따르며 자율과 책임, 질서와 통제를 중시한다. 진보적 프레임은 '자상한 부모' 모델을 바탕으로 공감과 돌봄, 연대와 협력을 강조한다. 유권자 대부분은 이 두 가지 프레임을 모두 갖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어느 한 쪽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권자들도 확고부동한 이념 성향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슈에 따라 판단 기준을 달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복지 확대나 기후위기 대응에는 진보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안보나 조세 문제에서는 보수적 시각을 드러내는 식이다. 탈원전 정책에는 비판적이지만 기본소득에는 공감하는 유권자, 부동산 규제에는 반대하면서도 검찰 개혁에는 찬성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 이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판단이 좌표상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생활 경험과 가치 경쟁의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복합적 사고구조를 가진 이중개념 소유자들이야말로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숨어 있는 변수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중개념 소유자의 영향력은 여러 차례 입증돼왔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주요 선거마다 이들의 선택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목할 대목은 이들이 단지 중립적인 태도를 지닌 게 아니라, 시대정신에 부합하면서도 고유한 서사를 지닌 후보를 선호했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국면에서는 경제 위기를 타개할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2007년에는 실용주의와 경제 회복에 대한 열망이, 2017년 탄핵 정국에서는 정의와 법치라는 윤리적 프레임이 선택의 무게추로 작용했다. 이처럼 유권자의 이념 성향은 문맥적이며,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작동하는 가치와 감성의 조합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선거는 언어의 싸움이자 프레임의 전쟁이다. 이번 대선에서 첫 프레임은 조기 대선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론이다. 향후 국내외 혼란을 수습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낼 리더십도 선택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대선의 향배는 누가 유권자의 감성에 공명을 일으키는지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중도층이란 개념은 상상 속 산물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거창한 구호보다는 미래 비전과 희망을 전달하는 게 유리하다. 이번 대선도 유권자들의 내면에 잠재된 다양한 프레임 중 어떤 프레임을 끌어올려 표심을 자극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변수가 될 것이다.

jongw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17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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