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두려움 사이… 첫 강남 미용 시술의 기록[안드레스 솔라노 한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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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몇 주 전, 서울 강남역에 갈 일이 있었다. 용산구에 사는 내가 한강을 건널 때는 보통 이유가 정해져 있는데, 일 때문이거나 보고 싶은 영화를 강남 지역에서만 상영할 때, 그리고 잠원 한강공원 수영장을 찾을 때다. 그런 내가 일요일 오후 3시에 강남역을 찾았으니, 혹시 누가 나를 미행이라도 했다면 꽤 의외의 활동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게다가 강남역에 내려서 들어간 건물이 미용 클리닉이라는 걸 발견했다면 여간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에 산 지 10여 년, 이런 곳을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을 방문한 친구나 가족을 데리고 유명 화장품 가게에 가보기도 하고, 아내 덕분에 특정 제품의 이름을 외워 추천해 준 적도 있다. 이번 미용 클리닉 방문은 아내의 추천 때문이었다. 아내는 잠들기 전 기본적인 피부 관리만 하는 편인데, 최근 들어 우리 부부 모두 나이를 실감하던 차였다. 게다가 그곳에는 아내 지인이 근무 중이어서 예약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거울을 보며 말했다. “이제 할 때가 됐어.”

접수처 풍경은 공항 체크인 카운터를 닮아 있었다. 베트남, 태국, 일본, 중국, 한국 여자들이 작은 흰색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그 가운데 나는 유일한 남자였다. 얼굴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시술받아 피부가 거북이 껍데기처럼 울퉁불퉁해진 환자가 지나갔다. ‘아, 이건 단순히 마스크팩을 붙이는 정도가 아니구나.’

개인 물품을 사물함에 넣고, 조명이 달린 분장실 같은 세면대에서 세안을 했다.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리라는 안내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지루해져 결국 책을 꺼내 들었다. 이상한 행동임은 분명했다. 이런 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병원에서 흔하게 보는 잡지조차 그곳에 비치돼 있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서 대기실 분위기가 더 답답해졌다. 다행히 아내의 지인이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였다. 시술이 지연되는 걸 보자 나를 3층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고급 마사지실 같은 공간에 들어서니 비로소 숨이 트였다.

3분 정도 기다리자 이름이 호명됐다. 침대에 눕자 누군가 얼굴에 차가운 젤 크림을 잔뜩 발라준 뒤 램프를 쐈다. 잠이 들려던 찰나, 램프가 치워졌고 다시 2층으로 이동하라고 했다.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얼굴 관리의 세계에서 승진한 줄 알았는데, 전장으로 다시 돌아온 거였다. 옆에는 얼굴에 하얀 젤이 뒤덮인 여성이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하얀 크림 케이크를 얼굴에 던진 것 같았다. 15분 뒤 미세한 전기 충격을 주는 기계가 얼굴 위를 지나갔고, 곧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예전에 어깨에 문신을 새길 때 느낀 통증과 흡사했다. 이어 얼굴 곳곳에 주사가 놓였다. 시술은 한 시간 남짓 이어졌다. 주사를 맞은 지 10분이 지나자 불현듯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까 그 거북이 같은 피부로 나간 여성과 같은 시술이 아닐까 싶었다. 이윽고 시원한 젤이 얼굴에 도포된 뒤 시술은 마무리됐다. 시간은 오후 6시였다. 근처 서점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했다.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슬쩍슬쩍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성형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쇼핑하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던 과거의 나처럼. 당황스러운 마음에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 속 내 모습을 확인했다.

얼굴은 조금 붉어져 있었고 마지막에 바른 크림 때문에 미끈거렸다. 마치 야외 수영장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말이다. 시술 후 2주가 지났고 피부 상태는 확실히 나아졌지만, 다시 이 시술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다. 두세 달마다 찾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쉽게 중독될 수 있을 것 같다. 당분간은 아내처럼 밤마다 얼굴을 깨끗하게 씻은 뒤 기초 제품을 꼼꼼히 바르고 12년째 먹어온 김치가 노화를 늦춰주길 기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강남의 미용 클리닉이여, 50세가 되면 그때 다시 보자.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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