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돛대에 몸을 묶은 화가, 불멸의 눈보라를 그리다

1 month ago 11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트로이의 목마가 나오는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트로이의 목마를 모를 수 없다. 정상적인 프로그램인 척 침입해 컴퓨터를 파괴한다는 악성 코드 트로이의 목마를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그 악성 코드의 이름이 ‘트로이의 목마’라서 더 공포스러웠다. 트로이인들이 잠들었을 때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정예 부대가 쏟아져 나와 트로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트로이의 목마’라는 이름에 심겨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트로이의 목마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개봉 첫날에 보았던 것은 바로 그래서였다. 영화에 나오는 이름과 이야기에는 문명의 토대가 된 비유와 상징이 가득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의 뒷배가 되는 텍스트라고도 해야겠다.

영화 ‘오디세이’의 원작은 ‘오뒷세이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7세기쯤에 썼다고 전해지는 쌍을 이루는 두 편의 서사시 중 하나다. 다른 하나인 ‘일리아스’가 영웅들의 전쟁 막바지 며칠을 다뤘다면, ‘오뒷세이아’는 10년간의 전쟁에서 이기고도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하는 10년간의 이야기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라서 ‘오뒷세이아’다. 그리고 이 그리스어에서 ‘여정’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오디세이(Odyssey)’가 왔다. 오디세우스라는 그리스 영웅의 이름이 2000년 넘게 살아남아 ‘사연 있는 긴 여정’을 뜻하는 일반명사 속에 살아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디세이는 책과 영화 제목에도 쓰이고, 게임 제목에도 붙고, 장대한 귀환형 서사의 단골 비유로도 쓰인다. 1922년 제임스 조이스가 낸 소설 ‘율리시스’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어식 이름이고, 주인공(레오폴드 블룸)의 하루 동안의 ‘오디세이’다. 오디세이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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