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9년 전국 영어유치원은 615곳이었으나 2023년 842곳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일반 유치원은 8837곳에서 8441곳으로 줄었다. 일명 ‘4세 고시’로 불리는 레벨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아이를 선발하기도 한다.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못한 부모와 아이가 큰 심적 부담을 느끼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영어 조기교육 열풍을 “부모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신경안정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사실 영어유치원은 사설 영어학원에 가깝다. “어릴수록 빨리 배운다” “빠르면 좋다” “국제적 감각을 길러야 한다” 등 초등학교 준비교육 열풍과 맞물려 부모들은 큰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를 보낸다.
유아기는 언어 능력이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다. 이중언어 환경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 조기 이중언어 교육이 두뇌 발달과 인지적 유연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연구도 적지 않다. 고액의 학비에 비해 실질적인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유아기 언어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나친 외국어 위주 교육은 모국어 발달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 언어학자 짐 커민스는 모국어가 충분히 자리 잡기 전에 외국어를 무리하게 학습하면 두 언어 모두에 능숙해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필자가 근무하던 유치원에서 영어유치원 출신의 한 아이가 한국어와 영어 어순을 뒤섞어 쓰면서 의사소통과 사회성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유아의 뇌는 좌우 반구 분화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여러 언어를 동시에 접하면 발달 과정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만 3~4세부터 무리하게 영어교육을 받으면서 정서·사회적 충동 조절이 저해된 사례가 보고된다. 과도한 자극과 스트레스가 사회성·정서성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결국 조기 이중언어 환경은 아이에게 학습 부담만 가중해 사회적·정서적 능력이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 과도한 자극을 줄 수 있다. 유아기에는 외국어 습득보다 또래와의 상호 작용으로 사회적 기술과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지나친 학습과 언어 환경은 정서적 부담으로 원형탈모, 짜증·불안 증가, 학습 거부 등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유아기에는 ‘잘 시키는 것’보다 ‘잘 발달하게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래와의 놀이를 통해 사회성과 정서적 능력을 키우고 인지 능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생각하고 배우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건강한 발달과 진정한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을 이끄는 최적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