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불씨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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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불씨와 바람

공기가 서릿발처럼 매서워질수록 친구들과 함께 모닥불을 지피던 추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하얀 눈이 마당을 덮으면 우리는 작은 모험이라도 떠나는 기분으로 밖으로 나가곤 했다. 장작을 한 아름 안아 손끝이 얼어붙을 듯 시렸지만, 불씨를 붙이고 서서히 살아나는 붉은 불길은 이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모닥불 앞에 서서 우리는 잔잔한 불씨를 차분히 키워냈다. 작은 불이 점차 커지도록 바람을 불어넣되, 세기가 지나치면 막 피어오르는 불길마저 허무하게 사그라질 수 있으니 항상 신중해야 했다. 활활 타오르는 순간까지 섣불리 들뜨지 않고 인내심을 갖춰 지켜보는 그 과정은 겨울날의 소소한 축제이자 인생의 섭리를 깨닫게 한 배움의 장이었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불을 다루는 일은 곧 ‘균형(均衡)’과 ‘적기(適期)’의 예술이었다. 조금만 서두르면 불길이 흔들리고, 지나치게 망설이면 불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적절한 순간에 알맞은 강도로 바람을 보태야 장작불은 생명력을 얻는다. 이런 이치는 우리가 몸담은 사회나 조직 운영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고 본다.

현장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규제만 강화하면 활력을 찾아야 할 불꽃까지 쉽게 누그러진다. 반면 규제가 지나치게 느슨하면 불이 제 기세를 찾지 못하고 매캐한 연기만 피어오르는 상황이 벌어지기 쉽다. 모두가 피하고 싶은 광경이지만 결국은 잘못된 강도와 시점이 빚어낸 결과이니 생각할수록 안타까울 따름이다.

바람의 중요성은 회계제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감사인의 독립성과 감사 품질을 높이려는 취지로 감사인 지정제도가 강화됐다. 한국만 있는 이 독특한 제도로 기업은 감사인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비효율성까지 떠안았다. 더욱이 지정 감사인이 제시하는 조건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 기업은 협상력을 잃고 감사보수를 조정하기조차 어려워졌다. 결국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대가로 기업 경영 전반에 예상치 못한 부담이 가중되는 셈이다.

회계제도가 기업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아니라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되 실질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 도입의 본질과 현장의 목소리를 함께 고려한 균형 있는 개선이 절실하다. 불을 지피려는 바람이 불씨를 꺼뜨리고 있지 않은지, 정책 입안자와 현장의 실무자 모두 바람이 지닌 의미를 면밀히 헤아리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가혹한 한파라 할지라도 불꽃을 잘 지켜낸다면 언제까지나 따뜻한 온기를 유지할 수 있다. 친구들과 함께 보낸 겨울밤이 여전히 마음 한편에 깊이 새겨져 있듯, 균형 잡힌 회계제도가 우리 기업 생태계를 한층 더 온화하게 밝혀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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