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명마를 알아보는 눈

1 month ago 7

[한경에세이] 명마를 알아보는 눈

최근 손흥민 선수의 거취에 대해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우리나라에서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이 배출된 배경이 궁금해 알아보니 대한축구협회의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년 국가에서 유망주를 선발해 해외 명문구단에 국비 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으로 손흥민 선수도 이 프로그램에 선발돼 독일 축구와 인연이 시작됐다.

손흥민 선수가 유학 프로그램에 지원했을 때 축구협회는 기존 방식과는 달리 독일에서 평가위원을 데려와 테스트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였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처음 제도권 축구부에 가입한 손흥민 선수는 국내 대회 입상 경력이 전무했다. 기존 선발 방식이 지속됐다면 한국인 EPL 득점왕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 잠재력을 보고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금융기관들도 참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 상당수 금융기관이 재무제표 등 과거 실적지표를 바탕으로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관성적·관행적 지원체계로는 손흥민 선수와 같은 월드클래스 기업을 양성하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일수록 담보 부족 등으로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가 어렵고, 지분 감소 우려로 투자도 받기 어렵다고 한다. 2023년 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복수의결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벤처기업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무역보험공사는 과거 실적 지표 중심의 심사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 기업을 성장성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대폭 손볼 계획이다.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거액의 수출계약을 체결하고도 자금이 부족해 수출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설비투자 등으로 재무제표가 일시적으로 나빠진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금융 지원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중국 춘추시대 주(周)나라 때 유명한 말(馬) 감정가인 백락(伯樂)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명마라도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그 진가가 알려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다. 대문장가이며 당송 팔대가로 유명한 한유(韓愈)는 ‘세상에 백락이 있은 후에 천리마가 있는 법이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재능보다는 그것을 알아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책금융기관도 백락처럼 잠재력을 알아보는 눈을 길러 유망기업에 특별 금융 지원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유니콘기업의 ‘유니콘’도 신체는 말(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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