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동포인 심장외과 전문의 한 분을 알게 됐다. 야간 응급수술을 도맡는 등 격무에 시달려가며 받는 연봉이 100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의료배상 보험료, 세금 등 각종 비용을 빼고 남은 수입은 총액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보험료가 비싸긴 해도 의사는 의료사고 사후처리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환자와 유가족은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의료사고가 반복되면 보험료가 할증되므로 실력 없는 의사가 걸러지는 효과도 있었다.
이처럼 사회 제도가 개인과 사회 모두를 이롭게 한 사례는 금융 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기 서적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는 또 다른 저서 <행동경제학>을 통해 다음 사례를 소개한다. 모든 국민을 사회적 연금에 가입시킨 뒤 연금 가입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신청이라는 적극적 조치가 있을 때만 탈퇴를 허용했더니, 연금 가입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사회 구성원의 자유는 보장하면서도, 개인과 사회에 유익한 선택을 유도하는 방법을 ‘넛지’라고 부른다.
과연 넛지가 우리 정부 정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정부는 지방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방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한편 민간과 합작해 지방 투자기업 지원 펀드를 조성해 지원하고 있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민간합작 펀드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레버리지 효과다. 민간 자본의 참여를 유도해 같은 예산으로 더 많은 기업에 혜택을 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합리적 의사결정이다. 펀드 운용에 자기 돈을 투자한 민간 기업이 참여함으로써 부실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무역보험공사도 수출 기업을 더 많이 지원하기 위해 정부예산 외 다양한 방식으로 기금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은행의 무역보험기금 출연을 통한 ‘수출패키지 우대금융’이 대표적이다. 무보는 기금에 출연한 은행과 해당 은행을 이용하는 수출기업 모두에 무역보험 우대 혜택을 부여했다. 이로써 무보는 기금을 확충할 수 있었고, 수출기업은 낮은 금리로 더 큰 금액의 대출을 이용하게 됐으며 출연에 참여한 은행은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은행의 기금출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적 인센티브가 무보, 수출기업, 은행 모두에 득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냉전 당시 소련에서 유행한 농담 하나를 소개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핵무기를 두려워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경제학자들이다. 이들을 해외로 보내면 어느 나라 경제라도 무너뜨릴 수 있다.” 인센티브 없이 돌아가는 사회주의 경제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경제가 어렵다. 예산 부담을 줄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넛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