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디터 람스의 이 말은 필자에게 오래도록 남아 있다. 우리는 디자인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긴 시간 이해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시를 구조가 아니라 감정으로 기억한다. 햇살이 스며든 골목, 나무 아래의 공기, 오래된 벽의 색.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남는다. 좋은 도시란 사람의 감정을 기억하는 공간이 아닐까.
요즘 도시는 놀랍도록 효율적이다. 도로는 반듯하고 건물은 계획대로 세워진다. 공공시설도 효율을 기준으로 잘 정돈돼 있다. 그런데 도시가 편리할수록 사람들은 왜 더 외롭다고 느끼는 것일까. 길은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공간은 많은데 마음 둘 곳이 없다. 기술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백, 그것은 어쩌면 감성이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색은 건축의 피부가 아니라 건축의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도시 전체에 적용해 보자. 도시의 기분을 디자인할 수는 없을까. 머물고 싶은 거리,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공간, 계절의 감각이 녹아든 골목. 그런 감성적 디자인은 기능적 구조보다 더 깊이 사람을 끌어안는다.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 내가 사랑하는 도시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런 감성 중심 디자인은 현실화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감성지능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향기, 소리, 빛, 온도 같은 감각 요소를 공공공간에 통합하고 있다. 도서관에는 긴장을 완화하는 향이 흐르고, 노인복지시설 외벽은 기억을 자극하는 색으로 채워진다. 핀란드 헬싱키는 사계절을 닮은 색채, 혼자 있어도 고립되지 않는 벤치, 시선을 방해하지 않는 공간 배치를 통해 감정을 돌보고 있다. 작고 조용한 배려지만 그곳에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위로받는다.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은 큰 울림을 준다. 이곳의 주민은 모두 치매 환자지만 병원은 없다. 대신 카페와 미용실, 슈퍼마켓과 극장이 있다. 치료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삶이 있을 뿐이다. 마을 어귀에는 ‘버스 없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치매 환자들은 길을 잃으면 익숙한 장소를 찾는 습성이 있다. 정류장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공간이 된다. 그 자리에 요양사가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건넨다. 돌아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환자는 다시 일상으로 인도된다. 정류장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이런 디자인은 잊힌 기억과 남은 존엄을 위한 다정한 배려다.
도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살아간다는 관점이 있다. 건물보다 삶을, 구조보다 관계를 중요하게 보는 시선이다. 이제 도시의 진정한 복지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향한 시선에서 시작된다. 디자인은 더 이상 보이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느껴지는 것’을 위한 다정한 언어이자 회복의 언어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사람의 감정을 만든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그것이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