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No Shore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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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No Shore의 시대

15년 전 산업부 과장 시절,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해 호주 서쪽 작은 도시 퍼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퍼스는 해상유전의 핵심지로 자원 확보를 위해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한국 기업들도 진출을 추진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퍼스에 우리 기업 주재원은 전무한 반면 일본의 지상사 주재원은 2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오래전부터 일본은 세계 곳곳에 해외투자 및 현지법인을 통한 글로벌 경영이 일반화돼 있었다. 일본에 다시 돌아온 해외투자 수익은 일본 경제가 30년 가까운 침체기를 버티게 해준 힘이 됐다.

한국은 어떤가. 일각에서는 기업의 해외투자 증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이 해외에서 운영하던 생산시설을 다시 국내로 이전하도록 하는 ‘유턴정책’과 상반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정권 출범 후 해외투자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개방 경제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특성상 해외투자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기업들이 과거에는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나갔다면 지금은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을 넘기 위한 시장 진출 목적으로 해외로 나가는 사례가 더욱 많다.

현대차·기아만 하더라도 2023년 총 생산대수 약 720만 대 중 10여 개국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 약 360만 대로 50.5%를 차지하고 있다. 현지 공장 설립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2022년 말 기준 우리나라 기업이 300만달러 이상 투자해 설립한 해외투자 기업이 7700개에 달한다.

수출 환경 변화에 따라 이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라도 ‘코리안 인터레스트(Korean Interest)’를 창출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우리의 직접 수출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해 한국무역협회의 ‘대미 투자 현황과 경제 창출효과’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 대한 직접투자가 10% 늘면 우리나라 수출이 0.202% 증가한다고 한다. 해외 생산기지 건설을 위한 기계 장비 및 현지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를 국내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한국무역보험공사도 이런 흐름에 맞춰 수출 기업들의 해외 현지법인을 위한 지원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해외 현지법인들이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상품과 채권 유동화를 통해 운전자금을 지원하는 상품(단기글로벌매출보험)을 도입함으로써 기업과 금융기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수출 현장에서도 현지법인 지원 제도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듯하다.

무역과 관련해 국경의 의미로 사용하는 ‘쇼어(shore)’의 경계가 없어지고 ‘노쇼어(No shore)’의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온쇼어(On-shore·국내)든 오프쇼어(Off-shore·해외)든 뭣이 중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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