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수술 후 생존율 '세계 최고'…글로벌 치료 가이드라인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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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관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교수(왼쪽 두 번째)가 흉강경으로 폐암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김홍관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교수(왼쪽 두 번째)가 흉강경으로 폐암 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61.5%’.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센터의 폐암 환자 5년 생존율이다. 국내 평균(38.5%)을 훌쩍 넘는 1위다. 수술 후 사망률이 낮은 것은 물론 적은 수술 비용을 들여 짧게 입원 치료를 받는 ‘의료 질’ 지표로도 국내 1위다. 미국의 폐암 환자 5년 평균 생존율이 31%인 것을 고려하면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의 성적이다. 김홍관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교수는 이런 센터를 이끌고 있다.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 최고 실력의 의사들이 환자만을 위해 충분히 소통하며 치료하는 게 1등 센터의 비결”이라고 했다.

◇세계 폐암 치료 기준 만드는 의사

폐암 수술 후 생존율 '세계 최고'…글로벌 치료 가이드라인 만든다

김 교수는 흉강경, 로봇 등을 활용해 폐암을 수술하는 흉부외과 의사다. 국내 폐암 분야 독보적 1위인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센터를 2023년부터 이끌고 있다. 매년 이 병원에서 시행하는 폐암 수술만 1900건이 넘는다. 흉강경 등을 활용한 최소침습 수술 비율이 90% 이상이다. 환자 삶의 질을 높이고 수술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처를 적게 내는 수술을 많이 하면서도 성적은 세계 최고다.

김 교수는 세계폐암학회에서 폐암 기수와 그에 맞는 치료법 등을 정하는 ‘병기결정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의사로는 김영태 서울대병원 원장 등 네 명만 포함됐다. 이곳에서 정한 치료법 등이 세계 폐암 분야 의사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된다. 세계 치료 표준을 직접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2022년에는 폐암 환자 상태에 따라 림프절 절제 범위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전까진 미국 등에서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폐암 환자는 주변 림프절을 폭넓게 절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김 교수팀은 전이 가능성이 낮은 폐암이라면 림프절을 보존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낫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폐암 환자의 림프절 절제도 ‘맞춤형’으로 적용하는 ‘정밀의료 프로토콜’ 도입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한국 의사들이 경험적으로 해오던 치료법이 옳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라며 “항상 답은 환자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환자 부담 줄이는 연구도

김 교수는 지난해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림프절 전이가 없는 폐암이라면 조직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폐암이 생기면 으레 조직을 떼내는 조직검사를 한다. 이는 환자에겐 큰 부담이다. 그는 “폐암 환자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진행하게 된 연구”라고 했다.

지난달 발표한 스텐트 시술 환자의 암 수술법 연구도 마찬가지다. 고령 환자가 늘면서 심장 스텐트 등의 시술을 받은 지 1년 안에 암 진단을 받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 시술을 받은 환자는 혈액 응고를 막는 와파린 등을 복용하는데 이 때문에 출혈 위험이 큰 수술 등을 미루는 일도 흔하다. 김 교수팀은 출혈 관리만 잘 된다면 스텐트 시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더라도 빨리 암 수술을 하는 게 낫다는 것을 입증했다.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다. 최근 폐암 수술 전후에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을 활용해 암을 줄이는 게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도 하고 있다.

◇국내 폐암 분야 독보적 1위 이끌어

최근 몇 년 새 국내 병원계의 가장 큰 화두는 ‘세대교체’였다. 1세대 명의로 오랜 기간 병원을 이끌던 교수들이 잇따라 은퇴를 맞으면서 병원들의 진료 순위에도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이어졌다.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을 1위로 이끈 심영목 전 암병원장이 정년을 맞은 뒤 올초 분당차병원으로 옮기자 ‘예전 같은 명성을 유지하긴 힘들 것’이란 관측이 잇따랐다.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오랜 ‘1등 DNA’가 세대를 이어 이식되면서다. 김 교수는 “새로 자리 잡은 외과 후배 의사들의 수술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며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폐암 다학제 치료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모두 글로벌 학회 등에서도 내로라할 수준”이라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센터는 모든 진료과 의료진이 1년에 세 차례 모여 워크숍을 연다. 최신 연구 결과 등을 공유하고 치료법 등을 토론한다. 지난해 의정 갈등 기간에도 모임은 멈추지 않았다.

폐암은 국내 암 사망률 1위다. 과거엔 후기 폐암 환자는 치료법이 거의 없었다. 최근에는 면역항암제, 표적항암제 등이 등장해 후기 암 환자 생존율도 높아지는 추세다. 암을 수술로 떼어내는 흉부외과 의사와 항암제, 방사선 등으로 암세포를 없애는 종양내과·방사선종양학과 의사 간 협업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다학제 협업은 고난도 환자를 치료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오랜 방사선 치료 후 폐암이 재발해 수술 후에도 사망 위험이 20~30%에 달했던 환자를 무사히 회복시켰다. 담배를 많이 피워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 있는 데다 폐 조직 섬유화까지 심했던 환자다. 유서를 쓰고 가족과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했던 환자는 14시간 동안 의료진 20여 명이 참여한 대수술 끝에 새 삶을 선물 받았다. 김 교수는 “암 진단을 받아도 자책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며 “폐암은 유전자 돌연변이와 아형이 다양해 천의 얼굴을 가진 암”이라고 했다. 50세 이상이라면 저선량 CT 촬영을 해 폐암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 약력

▷1998년 서울대 의대 졸업
▷2009년~ 성균관의대 흉부외과학 교실 교수
▷2019년~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 과장
▷2023년~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암센터장 및 암병원 폐이식팀장
▷2024년~ 삼성서울병원 트렌드센싱·리스크모델링센터장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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