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의 나라' 일본에 뺏기다니…한국 어쩌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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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리벨리온이 최근 일본 도쿄에 첫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2일 “일본 AI 데이터센터 시장이 한국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며 “놓쳐선 안 될 시장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에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올거나이즈는 아예 일본으로 본사를 옮기고 최근 현지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스타트업업계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AI 유망주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빅테크는 일본을 ‘아시아의 AI 허브’로 낙점했다. AI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에 2032년까지 최대 30%의 법인세를 감면해주고, 데이터센터 건설 시 최대 450억엔(약 4428억원)의 보조금을 주기로 하는 등 일본 정부의 진흥책 덕분이다.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투자가 늘고, 기업의 AI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본은 AI 스타트업에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범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AI 관련 인재와 돈이 일본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SW 개발사에 파격 稅혜택…'팩스의 나라' 일본, AI 허브로 변신
"한국보다 AI 성장 빠르다"…국내 기업들, 속속 일본행

'팩스의 나라' 일본에 빼앗겨…한국은 이제 어쩌나 '비상'

‘인공지능(AI) 사업을 하려면 일본으로 가자.’ 요즘 한국 스타트업 사이에서 공식처럼 회자되는 말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팩스, 열쇠, 도장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이 디지털 전환(DX)이라는 중간 단계를 넘어 AI 전환(AX)으로 바로 넘어가려 하면서 거대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상장, 기업 인수합병(M&A), 자본 조달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데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 일본 진출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

한국 AI 스타트업이 일본으로 앞다퉈 몰려가는 현상은 지난해부터 조짐을 보였다. 기업용 AI로 유명한 올거나이즈는 미국에 있던 본사를 일본으로 옮기더니 최근 일본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노무라증권,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 등을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전체 매출의 약 70%를 일본 법인에서 거두고 있다.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는 “지금 일본은 AI를 받아들이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라며 “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AI 도입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소형언어모델(sLLM) 기업 업스테이지도 지난달 도쿄에 일본 오피스를 열었다. 기업용 AI 솔루션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생성형 AI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 역시 일본으로 무대를 넓혔다. 파인더스AI(리테일 비전AI), 피처링(SNS 데이터 AI 분석), 채널톡(AI 에이전트) 등도 올해 일제히 일본 법인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타트업이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중심으로 두고 일본을 ‘플러스 알파’로 삼는 식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AI 분야에 적극 투자하면서 발 빠르게 공조하는 동안 한국은 제도 정비조차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어서다.

◇ AI산업 주도권 뺏길라 ‘우려’

일본 정부는 AI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파격적인 지원책을 대거 내놨다. 지난해 11월엔 2030 회계연도까지 AI 및 반도체 지원에 10조엔(약 98조3400억원)을 쏟아붓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데이터센터를 짓는 기업을 상대로 재생에너지 활용 시설을 만들어주고, 정부 차원에서 송전망을 확충하고 있다. 전력 때문에 AI 데이터센터를 못 짓고 있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미국 빅테크가 잇따라 일본 투자를 공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발표한 일본 투자액만 합쳐도 186억달러(약 27조2700억원)에 달한다. 빅테크 대부분이 ‘아시아 AI 인프라 허브’ 유력지로 일본을 점 찍었다. 관련 투자를 검토할 때마다 한국은 후보에도 들지 않았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벤처캐피털(VC)도 일본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인력 부족부터 인프라 노후화, 지역 소멸 등 많은 사회적 과제를 풀어갈 방법으로 AI에 힘을 쏟고 있다”며 “AI 인프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관련 투자금이 일본으로 몰릴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딥시크로 글로벌 AI산업의 판을 흔든 중국에 이어 일본마저 AI 속도전에 뛰어들면서 한국의 AI산업이 사면초가 상황에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한국이 빨랐지만 AI 시대 전환에선 지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돈과 인재가 한국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글로벌 VC의 국내 벤처 투자액은 2318억원에 그쳤다. 2021년(9895억원), 2022년(6097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1조달러를 들여 미국에 ‘AI 로봇 산업단지’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할 수 있는 배경엔 AI 시대로 빠르게 전환하려는 일본 정부,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지은/최지희/고은이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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