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 이용권이라는 것이 있다. 첫째 아이에 200만원, 둘째부터는 300만원씩 지급하는 쿠폰이다. 취지는 좋은데 허점이 있다. 사용처 제한이 느슨해 양육과는 무관한 소비 지출, 심지어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데도 쓸 수 있다.
인터넷에서 ‘첫만남 이용권 명품 구입’을 검색하면 요지경이 펼쳐진다. “첫만남 이용권으로 명품도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저도 얼마 전에 가방 하나 샀어요”라는 경험담이 줄을 잇는다. “애 잘 키우라고 세금 쥐어짜서 주는 돈인데 그렇게 쓰는 게 맞나요”라는 질타도 더러 보인다. 월 100만원씩 나오는 부모 급여를 큰애 학원비로 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커다란 의문이 생긴다. 출산 지원금으로 명품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 돈을 안 줬다고 해서 아이를 안 낳았을까. 연 50조원이 넘는 저출생 대응 예산, 그중에서도 현금성 출산·양육 지원금은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을까.
출산·양육 지원금의 가장 큰 맹점은 어차피 아이를 낳을 사람에게까지 돈을 준다는 점이다. 추다해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과 휴고 제일스 시러큐스대 교수가 한국의 출산 지원금 효과를 분석한 논문 ‘출산과 출산 유보 가격 분포’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출산 지원금의 74%는 지원금과 상관없이 아이를 낳았을 사람에게 지급됐다. 전체 출생아의 94%는 지원금이 없었더라도 태어났을 것으로 분석됐다.
일부에선 출산·양육 지원금이 효과가 있으려면 금액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가족 복지 관련 공공 지출 규모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작다는 것이 근거다. 얼핏 보면 맞는 얘기 같다. 한국의 가족 복지 지출은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에 못 미친다. 38개국 중 31위다. 그러나 이 통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부 지출 규모와 출산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은 GDP 대비 가족 복지 지출이 0.7%로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데,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1.62명으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분야에 세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는 스웨덴과 프랑스다. GDP 대비 비중이 스웨덴은 3.4%, 프랑스는 2.9%다. 한때 저출생 극복의 모범 사례로 받아들여진 나라들이다. 한국의 저출생 대책도 상당 부분 이 나라들을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이들도 최근 출산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해 고민에 빠졌다. 그 외 여러 나라에서 정부 지원금은 기왕에 자녀를 갖기로 한 사람들이 조금 더 서둘러 아이를 낳게 하는 것 이상의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저출생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비롯해 문화적 요인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인구 문제 전문가인 야마다 마사히로 주오대 교수는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해 사는 문화를 한국과 일본에서 극심한 저출생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한다. 그런 복잡한 배경을 면밀하게 따져보지 않은 채 돈만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정된 재원 사정을 감안할 때 안일한 접근 방식이다.
경제학 이론 중에 합리적 기대 가설이 있다. 경제주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경제 상황의 변화를 예측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20~30대가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대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가 1468만 명, 20~30대는 그보다 222만 명 적은 1246만 명이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이 불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출산·양육 지원금을 준다는 것은 세금 부담이 추가된다는 신호다. 어쩌면 세금으로 지원해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식의 저출생 대책이 젊은 세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악화시켜 출산율을 더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할지도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7세까지 주는 아동수당을 17세까지 주고, 금액도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런 대책으로 젊은 세대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바꿀 수 있을까. 세금이 늘어난다는 신호가 돼 그들의 기대가 더 부정적으로 바뀌지는 않을까. 기존의 각종 출산·양육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부터 전면 재검토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