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들린 아이폰이 민망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유행 중인 ‘영포티’ 밈을 보고 든 생각이다. 인공지능(AI)으로 캐리커처화한 영포티의 모습은 뉴에라 모자, 찢어진 청반바지에 나이키 조던 운동화를 신고 신형 아이폰을 들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갤저씨’(갤럭시+아저씨)라는 단어가 유행이었는데 이제는 아이폰을 쓰면 ‘아재’라니.
영포티는 젊게 사는 40대를 긍정적으로 담은 개념이 아니다. 젊어 ‘보이는’ 아이템을 고수하며 나잇값 하지 못하는 세대를 비아냥 섞인 시각으로 풀어낸 이미지에 가깝다. 여기에 20대 이성을 노리며 젊음을 과시하는 40대에겐 ‘스윗 영포티’라는 더 농도 짙은 조롱이 더해진다.
40대는 이런 밈이 불쾌하다. 어릴 적부터 애용한 브랜드를 그대로 착용할 뿐인데, 젊은 패션은 모두 2030의 점유물이라는 듯한 태도가 달갑지 않다. 나이에 비해 좀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대수인가. 그러나 밈의 세계에선 긁히면 진다. 분노하는 40대의 반응은 또 다른 밈으로 확산하고 있다. 몇 년 전 만들어진 ‘노무(NOMU·No More Uncle·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다)족’이라는 신조어가 발버둥치는 4050을 희화화하는 단어로 재조명될 정도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에선 ‘유니 중년’(油腻中年·기름진 중년)이라는 말이 있다. 배에는 기름이 끼고, 담배 냄새를 풍기며 꼰대스러운 농담을 일삼는 4050을 젊은 층이 인터넷에서 조롱할 때 쓰는 말이다. 서구권 ‘젠지’(GEN-Z·2000년대 이후 출생자) 사이에선 베이비붐 세대를 향해 ‘오케이 부머’(OK, Boomer·그래, 베이비부머야)라는 말이 유행했다. ‘라떼는’(나 때는) 식의 철 지난 훈수를 두는 기득권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특정 문화권의 특징만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영포티 현상을 그저 웃어넘기기엔 영 찝찝하다. 한국 청년들의 뒤틀린 시선 밑바닥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자리한다. 2030 청년들의 삶은 전례 없이 버겁다. 고용률이 고령층을 못 따라가는 역전 현상이 반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청년층 고용률은 45%로, 60세 이상(48%)에 못 미쳤다.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으니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생존이 쉽지 않다. 최근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미만 청년 창업자 5명 중 1명(20.6%)은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40대(10.2%)의 두 배다. 10여 년 전엔 수억원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는데, 십수억원을 훌쩍 넘긴 서울 집값은 청년들의 박탈감을 더욱 극대화한다.
그렇다고 정치권에서 희망을 보기도 어렵다. 고용노동부가 ‘고용’ 간판을 뗄 정도로 노동 전성시대라지만, 청년 일자리 정책은 실종되고 그 자리를 중장년의 정년 연장 논의가 채우고 있다. 누군가는 오히려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하자는 배부른 소리를 꺼낸다.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이 지난해 여야 합의로 통과된 것도 주요 담론에서 청년이 빠져 있다는 방증이다. 기성세대가 견고하게 쌓아올린 시스템 속에서 청년을 위한 구명줄은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다. 한 정치인의 표현을 빌리면, 스마트폰을 갖고 싶다는 청년들에게 공중전화 박스를 잔뜩 지어주자는 담론만 되풀이된다.
불행에서 파생된 화살은 가까운 방향을 향한다. 좌절은 공격으로, 불운은 희생양 찾기로 전환된다는 건 심리학에서도 증명된 이론이다. 고작 먼저 태어났을 뿐인데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듯한 40대가 주요 타깃이다. 안정된 일자리와 부동산을 운 좋게 선점한 세대가 ‘젊음’까지 빼앗아 가려 한다니, 독점 자본마저 위협받는 세대의 불안감도 이해는 간다. 이런 와중에도 “2030세대는 극우”(조국 조국혁신당 비상대책위원장) 같은 극단적 표현이 정치권에서 먼저 나오는 걸 보면 가슴은 더 갑갑해진다.
구조적인 청년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면 영포티 현상은 한때의 밈에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젠더 갈등이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얼마나 소모적 대결로 몰아넣었는지를 생각하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문제다. 당시에도 ‘한남’(한국남자)이니 ‘꼴페미’(꼴페미니스트)니 하는 단어가 내전의 시작이었다. 혐오는 늘 혐오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을 배울 때도 됐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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