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 5000 시대는 꿈이 아닙니다. 기업 구조 개선, 상법 개정만으로도 충분합니다.”(모 여의도 펀드매니저)
“주가가 급등해서 좋지 않냐고요? 전혀요. 순수한 투자자들이 다칠까 걱정됩니다.”(모 대기업 임원)
코스피지수가 3100선을 돌파해 상승률 세계 1등을 달리고 있지만 증권가와 기업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여의도에선 낙관론이 쏟아지는데 상장사들은 불안과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최근 만난 대기업 임원은 자사의 주가 상승이 달갑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가가 오르면 기업 구성원도, 오너도, 투자자도 모두 좋은 게 아닌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그건 주가 급등이 실적 개선, 기술 경쟁력 등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임원은 당장 2분기 실적부터 걱정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는 언제 또 출렁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중국의 기술굴기는 반도체, 배터리, 철강, 화학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작년과 달라진 건 내부 정치 상황뿐인데 증권가에선 ‘5000피 시대’가 머지않은 것처럼 축포를 쏘아댄다. ‘실전 투자를 해본 첫 대통령’이 개인투자자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쏟아진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유튜브나 오픈채팅방에선 자칭 주식 전문가들이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일부 종목의 수상한 주가 급등은 강세장과 순환매라는 미명 아래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2020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이 증시로 몰렸고 동학개미 운동으로 모인 개인투자자들의 ‘영끌·빚투’ 자금은 코스피를 3300선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펀더멘털 개선 없이 쌓아 올린 모래성은 세계 경기 침체 우려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코스피는 유동성 파티 이전으로 후퇴했다.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은 미국 투자이민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주주환원 정책 강화와 주가조작 엄단 등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주가 상승을 위해서라며 처리한 상법 개정안은 소송 남발과 경영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 성장에 필요한 연구개발(R&D)이나 시설투자 자금이 경영권 방어에 사용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기업의 펀더멘털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은 증시 상승은 신기루일 뿐이다. 모멘텀만으로 오른 장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2020년처럼 일부 ‘꾼’만 돈을 벌고 뒤늦게 올라탄 대다수 개인은 돈을 잃기 마련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 활동을 돕고 규제를 혁파하는 것, 중국과의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모두를 위한 주가 상승과 ‘잘사니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