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약 출시를 앞둔 글로벌 제약사의 아시아·태평양 총괄 책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새로운 제품을 비대면진료 플랫폼과 연계해 빠르게 시장에 안착시키는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비대면진료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아연실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의료대란 해결 및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비대면진료 제도화를 공약했다. 이후 이 대통령이 당선된 지 1주일 만인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대면진료를 법제화하는 법안이 나왔다. 전진숙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18세 미만 미성년자와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만 예외적으로 초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장년층은 대면 진료 이후에만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청장년층에도 초진을 허용한 현행 비대면진료 시범사업보다도 후퇴한 내용이다. 청장년층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직장인 등이 많아 비대면진료의 실질적 수요층으로 꼽힌다.
닥터나우에 따르면 2020년 11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시행된 약 270만 건의 비대면진료 가운데 90.9%가 18~64세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일용직, 프리랜서, 1인 자영업자 등은 병원에서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하루 수입 손실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병원을 찾기 힘든 여행지에서 갑자기 질병에 걸린 환자들도 큰 불편을 겪게 된다. 유행성 질환이 번지는 시기에 대면 진료 환자가 병원에 몰리면 감염이 더 빠르게 퍼지기도 한다.
민주당 법안은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네거티브 규제’ 기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는 미래 첨단산업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만 제한을 두는 방식의 규제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비대면진료를 법으로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부분 국가가 초진 비대면진료를 허용했다.
비대면진료의 안전성과 효과는 이미 입증됐다. 2020년 국내에 한시적으로 허용된 이후 지금까지 중대한 의료사고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환자 82.5%가 비대면진료를 안전하다고 평가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헬스케어산업은 몇 안 되는 미래 먹거리 중 하나다. 국민도 불편하고, 성장동력 산업도 죽이는 규제 법안은 ‘잘사니즘’, ‘먹사니즘’과 양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