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자동차 배터리는 한국의 3대 주력산업이다. 수출, 투자, 일자리를 견인하는 국부의 원천이자 인공지능(AI)과의 융·복합화가 파상적으로 일어나는 산업이다.
배터리는 자율주행차·전기자동차 성장궤도를 추종한다. 전력을 필요로 하는 이 세상 모든 모바일과 동행한다. AI 로봇과 도심항공모빌리티(UAM)도, 미래 선박과 항공기도 배터리로 움직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래 청사진으로 자동차 50%, UAM 30%, 로보틱스 20%를 제시한 이유가 있다. 자동차라는 칸막이를 넘어 AI, 자율주행, 로봇, 배터리 등 인류 문명의 첨단 역량을 모두 결집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주행은 또한 엄청난 규모의 반도체를 요구한다. AI 칩과 시스템반도체 외에 고용량 D램과 낸드플래시도 필요하다. 실시간으로 도로를 주행하는 과정에서 도시 또는 국가 단위의 정보통신망과 연결하고 수많은 데이터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만 스마트폰의 20배에 달한다. 앞으로 AI와 배터리로 움직이는 모든 모빌리티가 첨단 반도체를 장착하게 될 것이다.
3대 산업은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가며 새로운 가치사슬을 만들어낸다. AI와 메타버스는 제조혁신에 가담할 뿐이다.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둘도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한국은 산업·군사 강국임에도 강대국들 틈바구니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아직은 작은 파도에도 크게 흔들리는 조각배 신세다.
이런 나라의 주력 산업에 균열이 생기면 국가 전체의 경제·안보 전략이 흔들린다. 현대자동차가 팬데믹 시절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인 것은 삼성과 SK 덕에 전 세계적 반도체 품귀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터리 3사는 거꾸로 현대차 사슬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공급망 전쟁은 국가 간 존망을 건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국력을 총동원하는 전쟁이기에 도널드 트럼프처럼 동맹국이나 교역국에 대한 회유와 겁박도 서슴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20여 일이 지났다. 일단 출발은 좋다. 코스피지수가 3년5개월 만에 3000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두 달간 상승률(30% 안팎)이 세계 1위다. 증권시장 역사상 신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이 이 정도로 부풀어 오른 적은 없었다.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은 기업과 가계 모두에 좋은 일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넘어 온 가족의 영혼을 탈탈 털어야 할 정도로 급등세를 보이는 서울 집값의 유동성 쏠림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
우리가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것이 있다. 3대 산업 주가가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주가는 전고점 대비 30%가량 빠져 있다. 최근 상승장은 방산·조선·전력주가 앞장서고 금융·AI·스테이블코인 관련주가 뒤를 받치는 흐름이었다. 이들 산업만으로 코스피를 4000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 유가증권시장 내 시가총액 비중이 절대적인 3대 산업이 움직여야 한다. 전후방 상장사들을 합치면 4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좀처럼 응답하지 않는다. 주가 상승을 가로막는 불확실성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메모리의 추격과 파운드리 사업 부진, 현대자동차는 미국의 관세장벽, 배터리 3사는 전기차 캐즘과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상법 개정안을 아무리 주주친화적으로 만들어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이다.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해 기업들의 손발을 묶어버릴 수도 있다. 3대 산업이 봉착한 난제 중 대부분은 해당 기업들이 해결해야 하지만, 일부 연구개발(R&D)과 자금 문제는 정부와 국민이 총력 지원해야 할 것도 있다. 대장주 삼성전자가 중국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에 덜미를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미래 생존자들만이 나누는 과실을 향유할 수 있다. 과거 부실기업의 대명사였던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뎌 미국발 조선특수를 맞이하는 상황을 보라.
이재명 정부가 내건 AI강국 비전은 대단히 중요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네이버 카카오 AI로 국민 편의성을 높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부 자체를 키울 수는 없다. 대통령의 ‘먹사니즘’ 구호를 빌리면, 누가 뭐래도 우리가 먹고사는 기반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