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권에 출입하는 기자들에겐 일종의 ‘직업병’이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별 손해액을 확인하는 일이다. 경북·경남 지역에 대형 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복수의 손해보험사에 ‘이번 산불로 인해 얼마나 손해를 볼지’ 물었다. 올해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발생한 산불로 미 보험사들이 수십조원의 손실을 떠안은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이번 산불로 보험사가 입을 손해는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뒤이은 말이 마음에 걸렸다. “회사 손실이 적은 건 다행이지만, 결국 개인이 모든 피해를 져야 하는 상황이라 안타깝습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은 여의도 면적(290ha)의 156배에 달하는 지역을 까맣게 태웠다. 불탄 산림에 대해선 정부(국유림)와 개인(사유림)이 사실상 모든 피해를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손해보험통계 연보에 따르면 화재보험 산림화재 특약 가입 건수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총 29건, 연평균 5.8건에 불과하다. 산림청이 소유한 국유림은 화재보험에 아예 가입되지 않은 상태다.
산불이 나면 산림뿐 아니라 인근 가옥이나 공장 등도 화재 위험에 노출된다. 이런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화재보험과 재산종합보험이 있지만, 비싼 보험료로 가입률이 저조하다. 특히 어르신이 많은 시골은 화재보험 가입률이 더 낮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전망도 ‘최소’ 수준에 맞춰져 있다. 각 지자체가 재난·사고로 인한 시·도민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가입하는 ‘시민안전보험’이 있지만, 이마저도 대물배상은 보장 항목에서 빠져 있다. 정책보험인 풍수해보험은 태풍, 호우, 지진 발생 시 보험금을 지급하지만 산불로 인한 피해는 보상하지 않는다. 또 다른 정책보험인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54%에 불과하다.
물론 지나친 보험 가입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보험을 통한 보상이 없다면 결국 사후적으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재정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화재 취약 지역에 정책보험 가입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산불 피해 가능성이 큰 지자체는 시민안전보험의 대물배상 특약에 가입하거나, 풍수해보험의 보장 대상에 ‘산불’을 추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화재보험 가입을 독려하고, 주요 선진국 대비 미비한 산림보험 시장도 활성화해야 한다. 대형 산불이 날 때마다 정부와 업계에서 ‘반짝’ 논의가 이뤄진 뒤 매번 흐지부지된 사안이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