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이 다 개발할 필요가 있을까요. 잘하는 외국 기업 (기술) 사 오면 되지.”
‘레거시 공학’의 몰락을 보도한 한국경제신문 10월 21일자 A1·3면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도 잠깐 가진 의문이다. 이 얘기를 주요 대학 공대 교수들에게 들려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선진국일수록 레거시 공학의 강점을 잘 압니다. 후발 주자들이 오히려 따라오기 힘든 분야거든요.”
레거시 공학은 구조와 원리가 100년 이상 변하지 않고, 산업 표준이 이미 확립된 기술을 말한다.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이 대표 사례다. 땅속에 물을 주입해 압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석유를 끌어올린 1900년대 초·중반 기술을 탄소 저장 용도로 역이용했다. 지하 유전의 암석층 틈새에 이산화탄소를 영구적으로 격리하는 방식이다. 환경을 파괴하던 기술이 환경을 지키는 기술로 재탄생한 셈이다.
기사엔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전력 인프라 기술로 꼽히는 초고압직류송전(HVDC)과 아스콘, 터빈을 사례로 들었는데 이 밖에도 소외된 레거시 공학이 다수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음향산업을 예로 들었다. 2010년 초·중반을 기점으로 전국의 음향 공학 교수가 모두 퇴임하며 국내 음향 엔지니어 명맥이 끊겼다. 음향 공학은 잠수함 등에 적용되는 스텔스 기술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상전의 판도를 바꾸는 드론 분야에서도 최근엔 스텔스 성능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미 핵잠수함의 스텔스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연구소를 미 해군과 함께 공동으로 운영 중이다. 자동차산업에서도 음향 공학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6년 세계적 오디오 브랜드 하만카돈을 인수했고, 하만카돈은 최근 B&W, 데논 같은 굴지의 음향 브랜드를 잇달아 사들이고 있다.
현장의 공학 교수들은 레거시 공학의 몰락에 대해 정부 입맛에 따라 과학기술 정책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HVDC만 해도 소위 진보 정부의 전유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해상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송전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어서다. 진보 정부가 대표적 레거시 공학인 원자력발전 기술을 뒷방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처럼 보수 정부는 HVDC를 전 정부의 실수 정도로 치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과학기술을 중시한 나라는 흥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망했다”고 말했다. 시대 흐름 속에서 학문이 뜨고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공학만큼은 예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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