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요? 그건 대기업이나 하는 거죠. 하루 벌어 하루 겨우 먹고삽니다.”(공구 제조사 대표)
“판로가 끊기면 당장 직원 월급도 못 주니 거래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죠.”(화장품 제조사 대표)
국내 수출 중소기업이 원·달러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과거엔 환율이 오르면 달러 표시 완제품 가격이 떨어져 고환율이 수출 기업에 유리했지만 모두 옛날 얘기가 됐다. 고환율 시대엔 외화로 지불하는 원자재 값이 올라 원화 약세로 생긴 완제품 가격 경쟁력을 상쇄한다. 수출 비중이 80%인 전자제품 제조업체 A사 대표는 “‘을’의 입장인 우리가 원자재 비용 증가분을 완제품 가격에 반영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엔 새로운 악재가 생겼다. 해외 거래처들이 고환율로 환차익을 얻는 국내 수출기업에 납품가를 낮추라는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주요 수출 중소기업 33곳을 조사한 결과 23곳이 이런 압박을 받고 있었다.
특히 미국보다 일본, 동남아시아에 수출하는 업체의 타격이 컸다. 강달러에 해당 국가 통화의 약세까지 겹쳐 미국 업체보다 원하는 단가 인하 폭이 컸기 때문이다. 2023년 1월 1230원대인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480원대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원·엔 환율은 1000원대에서 930원대로 떨어졌다.
이런 악조건에서 끄떡없는 중소기업도 있다. 자체 기술력을 갖춘 덕에 다른 업체에도 납품할 수 없어 특정 거래처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천연 화장품 방부제를 개발해 제품 유통기한을 6개월에서 36개월로 늘린 이엔에스코리아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를 창업한 박준한 대표는 “해외 중간 도매상으로부터 단가 인하 요구를 받았지만 ‘나중에 환율이 하락하면 환차손을 보상해줄 거냐’며 딱 잘라 거절했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이 환율 변동성에 대비할 수 있는 경쟁력은 기술뿐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은 여전히 다른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연구개발(R&D) 예산은 줄이고 대출 지원만 늘리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중소기업 R&D 예산을 1조4097억원으로 전년보다 23%가량 줄였다.
중소벤처기업부 수출 담당자는 “R&D 지원이 근본적 중소기업 지원 대책인 건 잘 알지만 당장엔 긴급경영자금이나 수출지원금을 조속히 푸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정부와 기업 모두 임시방편에 급급하기보다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