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만들던 회사 아니냐고요? 차량용 운영체제(OS) 최강자가 됐습니다."
존 지아마테오(사진) 블랙베리 최고경영자(CEO)는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전기차 시대를 맞아 블랙베리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거듭났다"며 "회사 정체성은 이제 완벽한 소프트웨어(SW) 기업"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여전히 국내외 산업계에선 블랙베리를 스마트폰 제조사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블랙베리폰은 과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전 세계 최고경영자(CEO)들의 필수 아이템이었을 정도로 존재감이 막강했다. 쿼티 키패드를 앞세운 높은 보안 성능 덕분에 2010년대 초반까지 블랙베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애플과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밀리며 하락세를 겪었고 회사의 존립을 우려할 정도로 위기를 겪었다.
회사의 운명을 바꾼 것은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지털 콕핏, 전장 제어 시스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전기차 배터리 관리 등을 담당하는 차량용 OS 'QNX'다. 지아마테오 CEO는 "QNX는 시동을 거는 것 부터 창문 조작, 에어백 작동 등 차량 내부 모든 것을 제어하는 신개념 자동차 OS"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볼보, 도요타, 혼다, 둥펑자동차 등 전기차 제조사 24곳이 QNX를 채택했고 전세계에 판매된 2억5000만 대 이상의 자동차에 QNX가 탑재됐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2021년 기준 QNX가 글로벌 차량용 OS 점유율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지아마테오 CEO는 "한국 자동차 제조사들도 QNX를 활용해 미래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며 "한국은 블랙베리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고 방한 이유를 밝혔다. 그가 꼽은 QNX의 강점은 높은 개방성이다. 그는 "다양한 하드웨어와 SW 환경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시스템이 멈추는 일이 거의 없다"며 "150개 이상 분산된 전자제어장치(ECU)를 하나의 중앙 제어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SDV의 복잡한 구조를 가장 잘 견디는 차량용 OS가 QNX"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QNX의 안정성도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의 선택을 이끌어낸 장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사각지대를 감지하거나 보행자를 인식해 경고등을 표시하는 기능, 자동 긴급 제동처럼 탑승자 생명과 직결된 시스템들이 QNX로 구동된다"며 "QNX의 안정성이 운전자의 안전까지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량용 OS 시장의 성장성도 블랙베리가 QNX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은 차량용 OS 시장 규모가 2023년 140억3000만 달러에서 2030년 263억1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블랙베리는 QNX 외에도 두 개의 주요 사업부를 운영 중이다. 블랙베리의 통신보안사업부는 정부기관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음성, 영상, 데이터 암호화 솔루션과 재난 알림 시스템, 보안 메시징, 데이터 관리 기능 등을 제공한다.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주요 정부기관이 고객이다. IP라이선싱사업부는 40년간 축적한 특허를 기반으로 외부에 지식재산권(IP)을 판매하고 있다.
한때 분기당 3500만달러, 연간 1억5000만달러의 적자를 내던 블랙베리는 QNX 전진 배치 등 사업 구조 개편을 통해 흑자 기조를 회복했다. 지난해엔 매출 5억3490만 달러, 영업이익 669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아마테오 CEO는 "이제는 연간 5000만 달러의 영업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블랙베리는 사라지지 않았고 새롭게 돌아왔다"고 강조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