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포퓰리즘에 무너지는 군대…국방부시계 다시 돌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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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문화 비약적 개선…병장 월급 30년전 1만원→200만원

간부 복지는 제자리걸음…초급간부 이탈로 지휘공백 심화

민주화 이후 복무단축 공약 탓 병력 절벽 초래

모병제는 국민정서상 불가, 은퇴자 고용 등 대안 강구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희멀건 된장국에 막두부 몇 조각 들어간 'X국'으로 삼시세끼를 해결했던 이 땅의 중년들. 해 뜨면 훈련과 사역, 해 지면 점호와 구타의 두려움에 떨며 햇수로 4년을 보내야 했던 그들에게 군대는 평생의 트라우마다. 생활관 통로에 붙은 '구타 근절' 포스터가 무색하게 밤이면 내무반과 막사 뒤편에서 일방적 대련이 벌어졌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더니 사시사철 굼벵이 기어가듯 동작이 굼떠서 부아만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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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개전투 훈련하는 훈련병

[연합뉴스 자료사진]

교도소도 아닌데 휴가에는 왜 그리 인색했는지 멀리서 가족, 친구가 찾아와도 영내를 벗어나지 못했다. 운 좋게 2박3일 포상휴가를 받고 서둘러 고향가는 날엔 살벌한 검문소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하이바'(헬맷)를 깊게 눌러쓴 헌병이 버스에 올라 불심검문을 입에 올리면 죄인 된 심정으로 처분을 기다려야 했다. 재수가 없으면 버스에서 내려 정강이를 차이거나 검문소에 꼼짝없이 갇혀 아까운 교통비를 날리기 일쑤였다. '대한민국 5대 장성'이란 병장의 월급이 1만원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다시 군에 가는 꿈'은 뭇 남성들에게 가장 무서운 꿈이지만, 요즘 중장년이 병영을 직관하면 '이게 군대냐' 하는 걱정이 절로 들 정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우선 고참과 쫄병이라는 이분법이 사라졌다. 육군의 경우 입대일로부터 3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동기로 묶여 일병이 병장을 친구 대하듯 하는 부대도 있다.

청소도 계급 상관 없이 돌아가면서 하고 일과 후와 휴일은 진짜 자유시간이다. 선임이 후임에게 욕이라도 하면 과거 소원수리라 했던 '마편'(마음의 편지)에 찔려 부대를 옮겨야 할 상황에 처한다.

이미지 확대 '제육볶음ㆍ상추쌈ㆍ동그랑땡ㆍ호박된장' …군 장병 점심 메뉴

'제육볶음ㆍ상추쌈ㆍ동그랑땡ㆍ호박된장' …군 장병 점심 메뉴

(서울=연합뉴스) 경기 양주시 72사단 202여단 맹호부대에서 한 장병이 코로나19 무증상 격리 생활관으로 직접 배식한 점심을 가지고 이동하고 있다. 2021.5.27 [국회사진기자단]

'군대 좋아졌네'라는 감탄이 나올 법하지만, 부사관과 위관급 간부만큼은 예외다. 위로는 상관 눈치보느라, 아래론 관심병사 뒤치다꺼리 하느라 하루하루가 고된 판에 병사보다 못한 처우를 받게 되다보니 진급이 보장되지 않는 한 군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이를 반영하듯 육사와 해사의 자퇴 생도 수가 근래 3배가량 늘고 장교와 부사관 경쟁률이 무의미해졌다.

정치권이 무리하게 병사 복무기간 단축을 밀어붙인 것이 병력 절벽이란 재앙을 낳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전 육군 30개월, 해·공군 35개월이었던 복무기간은 이후 큰 선거 때마다 단축 공약이 나오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육군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로 줄어들었다. 육군 복무기간을 이명박 정부 당시의 21개월로 다시 늘리면 병력 부족이 해소된다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이미지 확대 해사 생도 입학식

해사 생도 입학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병력 절벽을 눈앞에 앞두고 초급간부가 군을 빠르게 이탈하면서 국방의 인적 토대가 허물어질 위기에 놓였다. 이번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각 당에서 모병제 도입과 여성징병제 등 각종 병력 수급 대책이 거론되고 있지만, 국민 정서가 용인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군에 가고 싶다'는 신체 건강한 중년 남성과 은퇴자를 경비병력 등의 대체 자원으로 투입하든 외국인 유학생에게 입대 기회를 주든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무슨 수라도 내야 한다. 옛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나 땐 말이야'를 외칠 때가 아니다. 포퓰리즘이 멈춰세운 국방부 시계를 이제라도 돌게 만들어야 한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10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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