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 절차적 정의가 무너질 때 생기는 참사 [화우의 바이오헬스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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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톡스에 4건 처분 모두 법원서 취소
형식적 청문으로 방어권 무력화
내부 공무원 주재, 독립성 결여
상장사 피해 수천억…책임자도 없어
외부 전문가 청문 의무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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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소유권 이전등기시 납세증명서 첨부가 의무화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내년부터 소유권 이전등기시 납세증명서 첨부가 의무화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행정청이 침익적 행정처분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청문이다. 청문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국민의 권익을 지키고 행정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다. 그러나 현실에서 청문은 종종 ‘행정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절차적 정의는 형식적인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최근 메디톡스 사건에서 식약 당국의 네 차례 행정처분이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모두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된 사실은 그 대표적 사례다.

메디톡스 사건, 식약 당국의 반복된 절차적 위법

보툴리눔 톡신 제제 제조와 관련하여 식약 당국이 메디톡스에 대해서 2020년 4월부터 약 6개월 동안 단기간에 연속적으로 발령한 4건의 행정처분에 대하여 법원은 절차적 위법을 인정한 후 모든 처분을 취소하고 메디톡스 손을 들어 주었다. 상장기업에 대하여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제조판매중지명령, 품목허가취소처분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모두 취소된 것이다. 청문 과정이 법이 요구하는 실질적 심리와 당사자 의견 반영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청문주재자가 피청문인의 주장을 외면한 채 행정청의 입장만을 사실상 추인하는 ‘형식적 청문’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친 소송을 통해서 법원이 나서서 절차적 위법을 바로잡은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상장기업이 입은 수 천 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해다. 위법한 처분이 법원에서 취소되기까지 장기간 소송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상장기업은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하여 상장기업의 주주들이 입은 손해 역시 막대하였다. 행정청이 저지른 위법이 기업과 국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행정편의적 청문의 그늘

현행 행정절차법은 청문주재자를 행정청 소속 공무원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로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이나 해당 분야 경험을 가진 전직 공무원 등이 그 대상이다. 또한 필요시 2명 이상의 주재자를 지정해 공정성을 담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식약 당국은 실제로는 대부분 내부 공무원을 청문주재자로 지정하고 있다. 행정청 소속 공무원이 같은 조직에서 조사한 사안에 대해 독립적으로 판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사·예산·평가 등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형식적 청문 → 예정된 처분 추인’이라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당사자의 방어권은 무력화된다.

메디톡스 사건에서 드러나듯, 공무원이 주재한 청문에서는 법리적·전문적 쟁점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청문 절차가 형식적으로 진행되어 행정청 스스로 그 잘못을 시정할 기회를 놓쳤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상장기업과 그 주주들에게 떠 넘겨졌다. 네 차례의 위법한 처분으로 인하여 상장기업에 수 천 억원의 막대한 손해가 발생하였음에도 위법한 처분을 한 어느 누구도 어떠한 징계나 손해배상 책임도 지지 않았다는 점도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절차적 정의의 본질은 ‘공정한 심리’

청문은 단순히 당사자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절차가 아니다.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그 주장의 법적·사실적 타당성을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검토하여 행정청에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이다. 그 결과에 따라 행정청의 처분 수위가 달라지거나 처분 자체가 철회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청문이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국민의 권익 보호는 불가능하다.

행정청이 ‘절차적 정의’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법적 형식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 국민에게 공정한 심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다. 청문이 형식으로 전락하면 행정권 남용을 견제할 장치는 사라지고, 법원이 뒤늦게 위법을 바로잡는 사후적 구조만 남게 된다. 이는 국민과 기업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전가하는 불합리한 구조다.

청문주재자, 반드시 외부 전문가로

이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첫째, 침익적 행정처분과 같이 당사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서는 청문주재자를 원칙적으로 외부 전문가로 지정해야 한다. 법률적 쟁점이 핵심이라면 변호사나 법학교수, 의약학적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라면 약학·생명공학 분야 전문가가 주재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행정청 내부 공무원이 단독으로 주재하는 청문은 제한해야 한다. 특히 선행처분이 위법해서 법원에서 취소된 경우, 그 재처분 청문에서는 반드시 외부 전문가가 주재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셋째, 복수 주재자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법률전문가와 기술·과학 분야 전문가가 함께 청문을 진행하면, 당사자 주장의 타당성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다. 이는 행정청의 처분에 객관성과 설득력을 부여하는 효과도 있다.

파초선의 교훈, 책임 행정, 국민의 신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서유기』의 파초선 일화를 언급했다. 파초선은 작은 부채에 불과하지만, 한 번 부치면 천둥 번개가 치고, 두 번 부치면 태풍이 몰아쳐 세상을 뒤흔든다. 대통령은 이를 빗대어 공직자의 행정행위는 누군가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공직자의 책임있는 자세를 강조했다.

청문 절차 역시 마찬가지다. 메디톡스 사건에서 보듯, 한 번의 형식적 청문, 한 번의 불공정한 절차가 국민의 권익을 무너뜨리고, 기업을 몰락으로 내몰 수 있다. 반대로 공정하고 실질적인 청문은 억울함을 풀어주고, 행정에 대한 신뢰를 쌓는 기초가 된다.

행정절차의 본질은 ‘절차적 정의’다. 공직자와 행정청은 청문을 결코 형식적 통과의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제도 개선을 통해 외부 전문가가 공정하게 청문을 주재하도록 하고, 국민과 기업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절차적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책임 행정’이며, 파초선의 교훈을 우리 행정에 살아 숨 쉬게 하는 길이다.

청문, 절차적 정의가 무너질 때 생기는 참사 [화우의 바이오헬스 인사이트]

권동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 대법원 지식재산권조 재판연구관, 서울 고등법원 고법판사, 특허법원 제1호 고법판사를 역임했다. 오랜 재판실무경험을 통해 법적 분쟁의 공격방어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뒷받침하여 승소를 이끌어내고 있다. 메디톡스를 대리하여 17전 16승의 전무후무한 실적을 거두는 등 국내 지식재산권 및 바이오헬스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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