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분야 지식재산권(IP)으로 사업을 본격화한 사람은 20세기 초 월트 디즈니다. 디즈니의 첫 캐릭터는 1927년 나온 ‘오스왈드 래빗’이었다. 디즈니는 이 토끼 캐릭터로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큰 성공을 거뒀지만, 배급사인 유니버설픽처스가 제작비 삭감 등 부당한 압력으로 판권을 가로챘다. 창작자 권리를 지켜줄 장치가 미비하던 시절의 뼈아픈 교훈이었다. 절치부심한 디즈니는 1928년 세계 캐릭터산업의 상징이 되는 ‘미키 마우스’를 내놓은 뒤 저작권·상표권을 확고히 하면서 체계적인 라이선싱 작업에 나섰다. 극장은 물론 TV·출판·완구·패션·테마파크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디즈니는 지난해 캐릭터 활용 매출로만 620억달러(약 86조원)를 거둔 세계 1위 문화 IP 기업으로 성장했다. 1970~1980년대 일본의 ‘건담’ ‘드래곤볼’ ‘포켓몬’ 등은 게임·만화·장난감과 연계한 IP 기반의 수익 다각화 모델을 정착시켰다.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이후 IP 보호는 국제무역의 핵심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콘텐츠는 단순 창작물이 아니라 글로벌 IP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OST가 이번주 미국 빌보드 싱글·앨범 차트 동반 1위를 차지했다. K팝 앨범과 수록곡이 동시에 정상에 오른 것은 BTS 이후 5년 만이다. 케데헌의 IP 가치가 1조원에 달한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러나 한국이 얻은 것은 한류 확산의 간접 효과뿐이다. 넷플릭스가 판권을 쥐고 있어서다. ‘오징어 게임’ 역시 1조원 이상을 벌었지만, 한국 제작사가 받은 건 25억원에 그쳤다.
올해 글로벌 IP 상위 50대 기업에 한국은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국이 32곳, 일본 7곳, 중국·프랑스가 2곳씩 포함된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콘텐츠 기업 매출에서 IP 사업 비중은 12.4%에 불과하다.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된 ‘IP 주권’을 되찾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케데헌도 외국의 자산으로 남을 뿐이다. 한류 열풍을 담아내고 IP까지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콘텐츠 강국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