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무기, 대포, 총, 핵폭탄…. 역사 속에서 전쟁의 판도를 180도 바꿔 놓은 기술들이다. 선점한 국가나 세력이 그 시대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게임 체인저’로 불릴 만한 전쟁 기술이 하나 더 등장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보급한 위성통신망 ‘스타링크’다.
현대전에서 통신 시설은 폭격 1순위다. 적국의 작전 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어서다. 통신망에 문제가 생기면 군사용 드론, 무인 항공기 등 실시간 위치 정보가 필요한 무기는 무용지물이 된다. 러시아도 이런 이유로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통신 시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때 스타링크가 깜짝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스페이스X의 도움으로 통신을 되살렸고, 첨단 무기를 운용하며 러시아와 교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스타링크는 지상 300~1500㎞ 저궤도를 도는 위성을 기반으로 구동되는 통신망으로 2020년부터 구축되기 시작됐다. 초고속인터넷 수준의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대신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좁다. 머스크 CEO는 이 문제를 위성 수천 기를 동시에 띄우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2027년까지 1만2000기의 위성을 띄우는 게 스페이스X의 목표다.
향후 저궤도 위성통신망은 전쟁의 핵심 인프라가 될 전망이다. 지상 통신망이 파괴된 상황에서 전자전을 이어가려면 위성을 활용한 통신이 필수적이어서다. 최근 중국이 ‘궈왕(國網)’으로 불리는 중국판 스타링크 구축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진행되는 지금도 ‘미국의 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 지원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광물 자원 채굴과 관련한 이권을 요구 중이다. 일부 외신은 미국 실무자들이 협상 결렬 땐 스타링크를 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크라이나 정부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머스크 CEO는 자신의 SNS에 해당 보도가 거짓이라고 반박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통신 주권이 자주국방의 필수조건이 돼가는 세상이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