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전후해 ‘유리천장지수(The glass-ceiling index)’를 발표한다. 기준은 ‘어느 나라가 일하는 여성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는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과 일본은 매년 최하위권이다. 한국은 2024년까지 12년 연속 꼴찌였다가 2025년부터 28위로 겨우 한 계단 올랐다. 바로 위가 일본으로 27위다.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유리천장을 가진 국가인 셈이다.
유리천장은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충분한 능력을 갖췄지만 조직에서 일정 직급 이상 오르지 못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세계경제포럼(WEF) 성별격차지수에서도 일본은 148개국 중 118위다. 주요 7개국(G7) 중에서는 최하위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근거가 여성 최고경영자(CEO) 수다.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시장에 상장된 1643개사 중 여성 CEO는 13명(0.8%)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대기업 여성 수장은 그냥 뉴스가 아니라 사건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다. 2023년 산토리 음료식품에 이어 2024년 일본항공(JAL) CEO로 여성이 선임됐다. 올해 일본의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줄리 김이다. 245년 역사의 일본 1위 제약사 다케다의 첫 번째 여성 CEO로 선임됐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재미동포다. 미국 의료기기 업체 박스터와 아일랜드 제약사 샤이어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9년 다케다가 샤이어를 인수하면서 소속이 바뀌었고, 7년 만에 이방인에서 인수기업을 이끄는 수장이 됐다. 그에게는 부실해진 다케다를 되살려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사회가 그를 고른 이유는 얼굴이 아니라 실행력이다.
일본의 유리천장에 금이 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우리는 어떨까. 국내 500대 기업 CEO 중 여성은 네이버 최수연, 카카오 정신아 대표를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한국의 유리천장도 여전히, 충분히 두껍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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