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탈모와 도수치료 논쟁이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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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탈모와 도수치료 논쟁이 남긴 숙제

“(탈모를) 미용이라고 봤는데 요새는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시작을 알린 이재명 대통령 말이다. 지난해 말 이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보험료만 내고 혜택은 못 받는 젊은 층의 소외감을 언급했다. 병원 갈 일이 없어 비용만 부담하는 이들에게 형평성을 맞춰주는 차원에서도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후 시작된 ‘탈모 급여화’를 둘러싼 논쟁은 6개월 만에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M자형 탈모 등이 있는 청년에게 치료비용을 지원하는 세부안까지 마련한 정부가 공론화 논의를 중단하면서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다. 사회적 약속과 합의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1883년 독일에서 노동계급 투쟁의 산물로 세계 첫 건강보험이 만들어지던 시기 세운 원칙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보험 가입자와 공급자가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별도 기구로 두고 급여 대상과 보험료를 이곳에서 결정하는 게 그 근거다.

[토요칼럼] 탈모와 도수치료 논쟁이 남긴 숙제

탈모 치료도 예외는 아니다. 탈모 탓에 생기는 정신적 피해나 사회적 불이익이 지나쳐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수요가 크다면 급여 항목 편입을 검토할 수 있다. 그간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치료에 건강보험 혜택을 준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자가면역질환 탓에 생기는 원형탈모 치료제는 이미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다. 유방암 환자의 수술 후 재건술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비용 절반을 부담하는 선별급여로 보험 항목에 진입했다. 생명에 직접 영향을 주진 않지만 암을 도려낸 뒤 겪는 극심한 상실감과 우울감을 해소하는 게 치료의 연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질병 치료 목표가 바뀌는 시대 흐름을 건강보험에 반영한 결과다. 과거엔 환자 목숨을 살리기 위해 병소를 없애는 게 최고의 치료였다. 암이 생기면 이를 크고 넓게 도려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게 외과의사 실력을 가늠하는 최우선 지표였다. 이젠 삶의 질을 목숨과도 비교 가능한 등가가치로 여긴다. ‘여생을 고통 속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치료’라면 필수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됐다. 환자의 일상 복귀를 돕기 위해 치료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의사들의 목표가 된 시대다.

이런 변화를 고려한다고 해도 젊은 청년을 위한 탈모 급여는 여전히 이르다. 탈모도 ‘생존의 문제’라지만, 환자 생존에 직접 영향을 주면서도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치료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암 환자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많은 항암 요법은 아직도 비급여 영역에 남아 있다. 로봇 수술과 중입자 치료 등도 마찬가지다. 희소 질환을 고쳐주는 ‘원샷 유전자 치료제’도 급여 제한에 막혀 쓰지 못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민간 실손보험이 없는 환자들은 수천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모두 직접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필수 치료재료 등이 여전히 많아서다.

건강보험의 재원은 유한하다. 꼭 필요한 치료를 제때 못 받는 중증 환자와 탈모 탓에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 중 사회보험이 비용을 지급해야 할 대상은 분명하다. 외모 때문에 차별받는 현실을 고려해 젊은 남성의 탈모 치료를 건강보험 우선순위에 둔다면 젊은 여성의 피부 레이저 시술, 미용 성형 수술도 급여 항목에 포함해야 성별 간 형평성을 맞출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최근 의사들이 반발하는 도수치료의 관리급여 편입도 같은 잣대로 바라봐야 한다. 의학적 타당성과 근거, 환자 이익과 시급성 등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가 비용을 부담할 가치가 있느냐다. 탈모 급여엔 반대하면서 도수치료 급여 축소는 안 된다는 의료계 ‘이중잣대’가 불편한 이유다.

한국에 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77년이다. 내년이면 ‘쉰 살’을 맞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급여 원칙 등에 관한 제대로 된 논의와 합의는 이뤄진 적이 없다. 의사, 약사 등의 이해관계가 켜켜이 얽힌 데다 정치적 셈법까지 엇갈려서다.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문재인 정부의 ‘문재인 케어’ 등 정권마다 정책이 바뀌었지만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표심을 잡기 위한 참모진의 결정이란 배경 설명만 물밑에서 언급됐을 뿐이다. 탈모 급여화 논의에도 ‘이대남 표심 얻기’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건강보험이 ‘정권 유지를 위한 쌈짓돈’이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배경이다. 탈모와 도수치료가 촉발한 건강보험 급여 논쟁은 이런 구태를 깨는 시작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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