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연중 평균 기온은 26도, 수도 리야드는 최고 54도까지 오른 적도 있다. 국토의 95%가 사막이다. ‘열사의 나라’라고 하는 이곳에서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동계 스포츠는 빙상과 설상 종목으로 이뤄진다. 빙상 경기야 실내 스케이트장을 지으면 된다고 하지만, 문제는 설상 경기에 필수적인 눈이다. 사우디 동계 아시안게임 대회 장소는 700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미래형 신도시 네옴시티의 산악 지대인 트로제나의 스키 리조트다. 해발 1600m 고원지대인 이곳은 겨울에 기온이 0도 밑으로 떨어져 눈이 내린다고는 하나, 스키장을 운영하기에는 턱도 없다. 당연히 대량의 인공눈이 필요하다.
36㎞ 길이의 스키 슬로프는 물에 남아 있는 염류를 제거하는 담수화 물탱크로 파우더를 생산, 조성한다. 엄청난 양의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상 첫 100% 인공눈으로 치러진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는 수영장 800개를 채울 정도인 2억2200만L의 물이 소요됐다. 400여 개 제설기를 가동하는 데 막대한 전력이 쓰였다.
환경단체는 물론 유명 스키 선수들도 사우디 대회를 놓고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사우디의 동계 아시안게임에 이은 동계 올림픽 유치 시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향후 개최지를 겨울 평균 기온 0도 이하인 곳에 국한할 조짐이다.
동계 아시안게임은 개최 희망지를 찾지 못해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상황에서 사우디가 먼저 손을 들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사우디의 노림수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독재자 빈 살만 왕세자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스포츠 워싱’이 그 하나다. 사우디 내부적으로 더 큰 이유는 산업 다각화다. 정유산업 일색에서 관광산업 육성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 불만을 잠재우려는 것이다. 국제 스포츠 행사가 흥행하려면 개최국이 어느 정도 성적을 내야 한다. 사우디는 얼마 전 폐막한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 처음 참가했는데, 선수단은 고작 8명이었다. 동계 종목의 대대적인 선수 스카우트로 스포츠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막에서 치러질 동계 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이래저래 말이 많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