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튀르키예 남서부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이 사진은 비극 그 자체였다. 잠자는 것처럼 엎드려 있는 아이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가다가 지중해에서 배가 전복돼 엄마, 두 살 터울 형과 함께 익사했다. 이 사진은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46년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시리아는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였다. 1970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하피즈 알아사드에서 안과의사였던 그의 둘째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로 세습된 철권 통치가 53년간 이어졌다. 아들 알아사드는 ‘아랍의 봄’ 여파로 2011년 일어난 민주화 시위를 탱크와 장갑차로 무자비하게 진압해 내전을 발발시켰다. 1300만 명의 난민을 만든 내전은 지난해 12월 이슬람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며 끝이 났다. 알아사드는 러시아로 망명했고, 시리아에는 과도정부가 세워졌다.
한국이 시리아와 곧 수교를 맺을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 대표단은 이달 초 22년 만에 시리아를 방문해 과도정부로부터 수교를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의사를 확인했다고 한다. 작년 2월 ‘북한 형제국’ 쿠바에 이어 시리아까지 수교를 맺으면 한국과 미수교인 유엔 회원국은 단 한 곳도 없게 된다. 시리아는 북한과 1966년 수교한 뒤 반세기 넘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같은 독재국가라는 공통점 외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하자 주시리아 북한 대사관은 철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리아는 석유나 가스 등 자원이 많은 중동 국가는 아니지만, ‘에너지 이동 통로’인 전략적 요충지다. 카타르 이라크 등의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보내려면 시리아를 통과해야 한다. 정치적 상황만 안정되면 경제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미국도 제재를 부분 완화하는 등 과도정부에 손을 내밀고 있다. 시리아는 에너지, 통신, 도로 등 인프라, 교육, 보건 등 5개 분야에서 한국의 우선 지원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수교가 중동 지역에서 외교 역량을 높이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