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정책의 권한은 행정부, 궁극적으로는 최고 권력자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도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국방 최종 권한이 부여된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만큼, 때로는 그 이상의 막강한 외교·안보 권한을 의회가 갖는 나라가 있다. 미국이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9년 국제연맹 창설을 주도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미국은 상원 반대로 가입이 무산됐다.
미 의회의 국방 권한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국방수권법(NDAA)이다. 의회가 국방 예산 내역을 정한 뒤 그 집행 권한을 행정부에 맡겼다는 데서 수권법(授權法)이란 이름이 붙었다. 1961년 제정된 뒤 매년 미국이 당면한 안보 사안과 국방 정책을 명시하고 그에 따라 예산을 책정하는 1년 한시법이다. 미 언론들이 ‘연례 국방정책법’으로 표현하는 데서 법의 상징성과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매년 7월이면 국방수권법의 골격을 가다듬는 ‘모크업’ 과정이 이뤄진다. 도널드 트럼프 1기 이후 한국의 최대 관심사는 주한미군 감축 관련 부분이다. 내년도 국방수권법 초안에 주한미군 관련 내용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인 지난해 12월 의회를 통과한 2025 국방수권법에는 한국에 배치된 약 2만8500명의 미군 규모를 유지한다는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내년 수권법 초안에는 ‘주한미군 감축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국방장관이 의회에 보증하기 전까지는 감축을 금지한다’는 취지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외견상 주한미군 감축을 억제하고 있는 듯하지만, 역으로 국방장관이 보증하면 감축할 수 있다는 ‘조건부 제한’이니, 감축 길을 열어놓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1기 때는 상원은 공화당이,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지금은 미 의회가 트럼프 국방 정책의 절대적 원군 역할을 할 수 있다. 닉슨 행정부 때 박정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닉슨을 만나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강력히 요청한 끝에 철군 병력이 두 개 사단에서 한 개 사단으로 축소됐다. 조속한 시일 내 한·미 정상회담이 열려 국민 불안감이 해소되기를 바란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