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같은 한국 프랜차이즈 빵집이 즐비하다. ‘K베이커리’ 열풍이 빠르게 확산한 영향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에서 운영 중인 파리바게뜨 매장은 188곳이다. 뚜레쥬르 역시 138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두 브랜드 모두 매년 30~40곳씩 점포를 늘려왔다. 다양한 상품 구색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한국 프랜차이즈 빵집의 강점으로 통한다.
‘K베이커리 속도전’이 가능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부자 영주권’으로 통하는 투자이민 비자 EB-5(Employment-Based Immigration-5)가 사업자를 모으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미국은 자국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EB-5 비자 제도를 시행 중이다. 90만달러(약 13억원) 이상을 투자해 1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면 본인과 가족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현지 사정에 어두운 한국인에게 행정 지원과 컨설팅 등을 하며 창업 이민을 독려했다. 투자자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영주권과 사업체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어서다. 특히 자녀가 미국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하지만 앞으론 미국 ‘빵집 이민’이 희귀해질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5일(현지시간) EB-5를 폐지하고 500만달러(약 71억원)에 영주권을 주는 ‘골드카드(Gold Card)’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영주권 가격으로 제시한 500만달러는 한국 0.1% 자산가의 순자산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EB-5 제도에 대해 “싼값으로 그린카드(영주권)를 갖는 방법으로 난센스이자 사기”라고 말했다.
허들이 높아진 것은 투자이민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 시민권제’를 없애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불법 이민자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행정명령이 시행되면 일부 한국인이 시도한 ‘원정출산 꼼수’도 차단된다. ‘미국=이민자의 나라’ 공식은 이제 옛말이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