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韓 법원 향한 로마법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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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2.20 17:24 수정2025.02.20 17:24 지면A35

[천자칼럼] 韓 법원 향한 로마법의 '경고'

1000년 넘게 존속한 로마는 수시로 법을 만든 탓에 법 간에 충돌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제각각인 법률을 네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법적 논쟁점을 정리한 <학설휘찬>과 요약판 법전인 <법학제요>, 옛 황제의 칙령을 모은 <칙법휘찬>, 당대에 반포한 법을 다룬 <신칙법>에는 수많은 분쟁을 거치면서 축적된 로마인의 지혜가 경구 형태의 법언(法諺)으로 빼곡하게 담겼다.

이 중 오늘날까지 널리 쓰이는 표현으론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문장이 첫손에 꼽힌다.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 공정한 제삼자에게 심판받아야 한다는 뜻의 이 문구는 마르틴 루터와 장 보댕, 토머스 홉스의 저술에 인용됐고 미국 대법원의 판결문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그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서 재판관의 이해충돌 가능성을 경고한 라틴어 문구가 떠오르는 장면이 반복됐다. 조한창·정계선 등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이유로 대통령직 권한대행에서 탄핵당한 한 총리의 탄핵·권한쟁의 심판에 당사자인 헌법재판관들이 ‘심판’으로 참석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은원(恩怨)뿐 아니라 판결 결과에 따라선 헌법재판관 자리까지 위협받을 이들이 ‘최종 결정자’가 되면서 이런저런 ‘뒷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로마법전을 넘기다 보면 오늘날 한국 사법부가 뜨끔할 구절이 적지 않다. ‘판결을 끌지 않는 것은 좋은 판사의 의무’(Boni judicis est judicium sine dilatione mandare executioni)라는 법언은 일부러 재판을 지연하는 판사에겐 준엄한 ‘경고장’에 다름없다. ‘서두르는 정의는 불운을 품은 계모’(Festinatio justitiae est noverca infortunii)라는 문구처럼 법리에 근거하지 않고 ‘정의감’만 앞세운 판결은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 탄핵과 같은 중요한 재판에선 절차적 흠결이 없어야 한다. ‘기초가 부실하면 작품이 무너진다’(Debile fundamentum fallit opus)고 로마법은 경고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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