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네덜란드 전자기업 필립스는 지름 12㎝의 은빛 원반을 공개했다. 훗날 일본 소니와 표준을 다듬어 세상에 내놓은 콤팩트디스크, CD의 출발이었다. 반짝이는 플라스틱 원반에 알루미늄 반사막을 입히고, 미세한 홈에 새겨진 디지털 음원 정보를 레이저가 읽으면서 음악으로 되살리는 방식은 당시로선 혁명이었다. 바늘이 홈을 긁는 LP의 ‘지지직’거리는 소리나 카세트테이프의 늘어지는 소음도 없었다. 원음을 생생히 재현한 CD의 음색은 경이로웠고, 단번에 세계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CD는 음악에만 머물지 않았다. 1991년 5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 CES에서 게임산업의 운명을 바꾸는 장면이 연출됐다. 소니가 닌텐도와 함께 개발한 CD롬 기반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을 선보인 것이다. 닌텐도와의 동맹은 깨졌지만 소니가 1994년 12월 독자 출시한 PS는 대성공을 거뒀다.
CD로 열린 실물 디스크 게임의 시대는 30여 년간 게임시장을 호령했다. 기존 카트리지(팩)보다 열 배 넘는 용량에 풀모션 영상과 방대한 사운드트랙까지 처리 가능한 CD는 업계의 표준이 됐다. CD는 DVD와 블루레이를 거치며 30여 년간 콘솔 게임의 ‘몸통’ 노릇을 했다. 당시 게임 CD는 아이들에게 보물상자였다.
하지만 스트리밍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CD도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나고 있다. 소니가 2028년부터 PS의 실물 디스크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는 소식은 상징적이다. 게임 매출에서 디스크가 차지하는 비중도 20% 밑으로 떨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콘솔 게임기 X박스도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제 CD를 꽂아 음악을 듣고, 게임을 즐기던 시대가 가고 다운로드와 클라우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영화는 DVD 대여점 대신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옮겨갔다. 음악 CD는 아직 생산되지만 팬덤의 증표로 소장을 위한 굿즈에 가까워졌다.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스트리밍되는 시대, 아날로그를 대체하며 디지털 콘텐츠 시대를 연 CD도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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