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았던 우승이었다. 행운처럼 주어진 연장전, 그래도 노승희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실수 없는 샷으로 6.2m 버디 찬스를 만들어냈고, 완벽한 퍼트로 짜릿한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22일 경기도 안산 더헤븐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더헤븐 마스터즈(총상금 10억원)의 주인공 노승희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에도 얼떨떨해보였다. 선두에 6타 뒤진 채로 시작한 최종라운드, "최대한 버디를 많이 잡는데만 집중했다"는 그의 말처럼, 우승이 쉽지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타 한타 버디를 잡는데 집중했고, 보기는 범하지 않는 무결점 플레이를 펼쳤다. 그리고 선물처럼 주어진 연장전에서 완벽하고 깔끔한 플레이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자신의 시즌 첫 승이자 투어 통산 세번째 우승이었다. 아버지와 캐디의 손을 잡고 더헤븐 리조트의 인피티니 풀로 뛰어드는 노승희의 표정에는 짜릿한 흥분이 가득했다.
이번 대회는 이변으로 가득했다. 대회 첫 이틀간 강한 비와 바람으로 지연이 거듭됐다. 결국 최종일인 이날, 오전에 2라운드 잔여경기를 치렀고 오후 12시께부터 세미샷건으로 최종라운드를 치렀다.
노승희는 선두 이다연에 6타 뒤진 공동 7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했다. 이날 경기 내내 노승희가 계속 되뇌인 말은 "마음을 비우자"였다고 한다. "올 시즌에는 상반기에 1승을 올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좋은 기회를 잡고도 마지막에 마음이 조급해져 기회를 놓치곤 했어요. 그래서 오늘 우승보다는 버디를 최대한 많이 잡아서 순위를 끌어올려보자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날 노승희의 경기는 완벽했다. 보기 없이 버디만 6개, 6언더파를 치며 출전 선수 가운데 데일리 베스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선두와의 격차가 워낙에 컸다. 노승희가 경기를 마친 뒤에도 이다연은 1타 차 선두로 17·18번홀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는 "남은 2개 홀에서 다연 언니가 충분히 타수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우승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다연이 17번홀에서 티샷 미스가 나오면서 노승희에게 기회가 생겼다. 이다연의 티샷이 오른쪽으로 크게 밀리면서 언덕 러프에 빠졌고, 이 홀에서 결국 보기를 기록했다. 팬의 사인요청에 응하고 있던 노승희에게 연장전을 준비하라는 연락이 온 것도 이때다.
퍼팅 그린에서 몸을 풀면서도 그는 연장에 대한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다연이 18번홀 버디퍼트를 놓치면서 동타로 정규 라운드가 끝났고, 우승 세러머니를 위해 생수병을 들고 있던 노승희는 연장전을 위해 카트로 향했다. 그는 "그순간 살짝 긴장이 됐다. 그래서 세러머니용 생수로 목을 살짝 축였다"며 미소지었다.
18번홀에서 열린 연장 1차전. 정확한 샷으로 페어웨이를 지킨 노승희와 달리, 이다연은 흔들렸다. 노승희는 세번째 샷만에 핀에서 6.2m 옆, 이다연은 네번째 샷만에 1.8m옆에 공을 보냈다. 버디를 잡기 쉽지 않은 거리, 보는 이들도 2차 연장을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서 퍼트감이 썩 좋지 않았던 노승희였지만 이 순간만은 달랐다고 한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얼토당토 않은 퍼트로 버디 기회를 놓친 적이 많았는데 이 퍼트에서는 달랐다"며 "어드레스를 하는 순간 자신감이 있었고 들어가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믿음처럼 공은 완벽한 궤적을 그리며 홀로 빨려 들어갔다. 6타차를 따라붙어 만들어낸 극적인 역전승의 순간이었다.
올 시즌 목표였던 '상반기 1승'을 달성한 비결 중 하나로 노승희는 지난달 경험한 US여자오픈을 꼽았다. 처음으로 밟아본 미국이자 처음 출전해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그것도 메이저대회였다. 노승희는 선수로서 꼭 한번 나가보고 싶었던 대회였다"며 "출전자격이 됐을 때 고민없이 출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출전 자체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한 세계무대는 역시 달랐다고 한다. 그는 "코스 세팅도 달랐고, TV서만 보던 선수들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영광스러웠다"며 "마지막 실수로 1타 차 커트 탈락을 하긴 했지만 다음날에도 거기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연습을 하면서도 연신 "커트탈락한 선수들 중에서 제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타이트한 양잔디에서 연습한 덕분인지 돌아오자마자 출전한 대회에서도 노승희는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귀국 직후 출전한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공동 25위로 준수한 성적을 거둔 그는 지난주 타이틀 방어에 나선 한국여자오픈에서 4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어진 이번 대회에서 결국 우승컵까지 품에 안았다.
노승희는 "제 꿈은 K10(KLPGA투어 통산 10승 보유자)"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또박또박, 꾸준히 잘 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는 설명이다. 올 시즌 1차 목표였던 상반기 우승을 달성한 그는 이제 다승을 정조준한다. 그는 "남은 대회에서 2승을 추가해서 3승을 목표로 하고, 또 하반기에 있는 메이저 대회에서도 정상에 서고 싶다"고 다짐했다.
안산=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