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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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덴마크 대니쉬 더건강한 우유’ 900mL는 2013년 2450원 가격표를 달고 처음 출시됐다. 한국소비자원이 물가 정보 사이트 참가격에 표시한 지난해 말 가격은 2851원. 11년간 가격이 401원 오르는 데 그쳤다. 연평균 상승률이 1.5%를 밑돌던 덴마크 우유값이 지난달 갑자기 4976원이 됐다. 한 달여 만에 74% 폭등한 이유는 허망하다. 단순 입력 실수였다. 제품값이 그럴 리 없다며 반발한 해당 우유 담당자와 일선 판매 상인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관계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소비자원은 곧바로 가격 표시를 중단했다. 얼마 뒤 예전 기록을 삭제한 채 슬며시 2980원으로 바꿔놨다.

쓴웃음 나오는 참가격 정보

덴마크 우유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소면 시장을 양분하는 백설 소면과 옛날국수 소면 가격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비자원에서 공개한 지난 26일 가격(900g 기준)은 각각 3292원, 4196원으로 900원 넘게 차이 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등에서 대규모 할인 행사를 하면 가격이 일시적으로 차이 날 수 있지만 전체 평균값이 이렇게 벌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원인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부 슈퍼마켓에서 백설 소면 최저가를 2900원으로, 옛날국수 소면 최고가를 5990원으로 입력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도, 소비자도 참가격 정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식품회사 간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이 표시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상식을 벗어난 가격이 표시돼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있던 결과다. 이런 식의 가격 정보라면 540개 상품이 아니라 1000개, 1만개 상품 가격을 알려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소비자에게 신뢰할 만한 가격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종합 포털 사이트라는 소비자원의 소개가 무색하다.

노후 시스템 개선 서둘러야

소비자원은 일반 시민단체가 아니다. 소비자기본법에 따른 법정 기구로 공정거래위원회 지휘 감독하에 소비자 권익 증진과 소비자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기구다. 다른 단체들은 소비자원과 비슷한 이름조차 쓰지 못하게 할 정도로 보호받는다. 안정적으로 물가를 유지하기 위한 전초기지인 소비자원에서 황당한 실수가 이어지는 것은 안타깝기만 하다.

소비자원도 참가격 시스템이 낡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유통업체들이 전달해주는 가격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40여 개 매장에 대해서는 용역을 맡겨 실제 가격을 확인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충분할 리가 없다. 참가격에 정보를 주는 유통업체는 500개가 넘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대안을 찾아야 한다. 특정 구간을 벗어난 가격이 입력되면 경고가 울리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등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챗GPT 등 인공지능(AI)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시대에 동떨어진 시스템을 담당자 1명에게만 맡겨놓고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무책임하다.

생활물가가 득달같이 오르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물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안정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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