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유상증자 공시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해가 바뀐 지 50일이 넘었지만 새로 유상증자에 나선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은 태영건설 한 곳뿐이다. 코스닥시장에서 21개 기업이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유가증권시장에서 8개 기업이 2조617억원을 유상증자로 조달했다. 2023년 5조2659억원 대비 60.8% 급감한 것이다. 같은 기간 코스닥 상장사의 유상증자 규모는 33.6% 늘었다.
금감원 눈치 보는 대기업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중심의 코스닥 상장사와 비교해 대기업이 많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자금 사정이 좋아 유상증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전년 대비 44조원 늘었다. 기업어음(CP) 발행은 26조원, 단기사채 발행은 12조원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도 LG에너지솔루션이 1조60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채권시장을 통한 대기업 계열사의 자금 조달이 확대되고 있다. 규모가 큰 기업이라고 내수 경기 불황의 깊은 골과 글로벌 불확실성의 높은 파도를 피해 갈 수는 없다.
대기업의 유상증자 기피 현상에 대해 자본시장에서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압박을 이유로 든다.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한 금감원의 심사가 까다로워져 기업들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해 말부터는 관련 문의조차 끊긴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정부 압박에 따른 부담이 커 유상증자 때 더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나온다.
실제로 유상증자를 발표한 코스닥 기업에 대한 금감원의 공시 정정 요구도 부쩍 늘었다. 자동차 부품기업인 와이엠이 지난해 10월 유상증자 결정을 처음 알린 이후 두 달에 걸쳐 네 차례나 증권신고서를 정정한 것이 단적인 예다. 올해도 상장사의 유상증자와 관련된 금감원의 압박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원장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상증자 등 주주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은 실효적인 내용이 잘 전달되도록 (증권신고서에) 기재돼야 한다”며 관련 감독 강화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이는 주식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유상증자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유상증자는 통상 기존 주식의 가치를 희석한다. 제3자 배정이 아니라 주주배정 방식으로 이뤄질 경우에는 그렇지 않아도 떨어진 주식을 울며 겨자 먹기로 추가 매수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긴다.
결국 소액주주에 부메랑
하지만 유상증자는 상장사의 대표적인 자금 조달 수단이다. 기업이 상장하는 것도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올해도 많은 기업이 힘든 상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이 무턱대고 유상증자 시도에 부담을 지우는 것은 경영활동에 장애가 된다.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기업은 경영이 악화해 결국 주가 추가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다. 소액주주를 의식한 유상증자 막기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업의 유상증자가 적절한 경영 판단인지는 결국 시장이 판단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