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업계에는 ‘물뼈다귀’라는 속어가 있다. 죠스바, 스크류바, 수박바, 캔디바 같은 아이스크림을 부르는 말로 ‘물탱이’라고도 한다. 물뼈다귀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나무 막대를 중간에 두고 설탕, 색소, 향료 등에 물만 부어 얼리는 방법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원가가 가장 적게 드는 덕분에 아이스크림 회사들의 효자 상품이다. 어느 편의점이나 마트의 냉장고에든 넉넉하게 채워 둔다.
월드콘, 부라보콘, 붕어싸만코 같은 제품은 다르다. 여차하면 동이 난다. 이들 상품의 공통점은 물보다 비싼 우유를 원료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물뼈다귀보다야 비싸게 판매되지만 이윤이 박한 탓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다. 엔초처럼 코코아까지 들어간다면 품절 가능성은 더 커진다.
죠스바와 스크류바의 공통점
빙과회사 관계자에게 수지를 맞춰서 많이 팔면 좋지 않냐고 물었더니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는 말을 들었다. 가격 인상 소식만 들리면 정부에서 득달같이 불러 모아 군기를 잡는다는 얘기였다. 지난 2월에도 그랬다. 월드콘과 붕어싸만코 가격이 300원씩 오른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7개 식품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함께 가공식품 물가 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말이 논의지 가격 동결 옥죄기다.
아이스크림뿐만 아니다. 과자와 라면 등 식품업계 전체가 마찬가지다.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된 식품의 가격 결정권은 정부가 쥐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강력한 통제의 결과는 변변찮은 영업이익률이다. 월드콘을 파는 롯데웰푸드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고작 3.8%였다. 4조원어치 넘게 팔아 1571억원을 벌었다. 국내 식품회사 대부분은 영업이익률이 5%를 밑돈다. SPC삼립은 2.7%, 풀무원은 2.8%에 불과하다. 신라면 매출만 1조원이 넘는 농심조차 4.7%다.
예외는 있다. 오리온과 삼양식품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17.5%와 19.9%로 세계 최대 식음료 회사 네슬레(17.2%)를 뛰어넘었다. 이들 회사의 특징은 국내보다 해외 매출이 크다는 점이다. 해외 각국에서 정부의 개입 없이 제품값을 결정한다. 미국은 물론 중국 베트남 등 어느 나라도 가격을 두고 뭐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식품 가격 통제로 인한 병폐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서 물가를 억누르겠다는 정부의 과욕은 파괴적인 병폐를 낳고 있다.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엄명’ 때문에 값싼 제품만 남기고 매대를 비우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알게 모르게 성분도 바뀐다. 외국 아이스크림과 우리 아이스크림의 성분표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하겐다즈의 원료엔 우유, 코코아 등 모르는 단어가 없다. 하지만 국산 아이스크림의 성분표엔 생전 처음 보는 성분이 즐비하다.
식품업계의 경쟁도 사라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4%대 영업이익률은 식품기업들의 든든한 철옹성이다. 마진이 적어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가 됐지만 신규 진출 업체까지 사라지면서 혁신의 필요성도 함께 줄었다.
우유를 원료로 삼는 아이스크림의 필수 재료인 코코넛오일 가격이 올 들어 40% 가까이 올랐다. 원가 부담으로 기업들이 가격 인상 압박을 이기지 못했을 때 정부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올여름에는 물뼈다귀 먹을 일이 더 많아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