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노동의 종말, 노동의 진화

1 month ago 13

[차장 칼럼] 노동의 종말, 노동의 진화

불이 꺼진 거대한 공장,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로봇팔이 큼지막한 자동차 차체를 조립한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공장을 흐릿하게 비추는 건 기계장치에 붙은 디스플레이와 로봇 센서 불빛들. 최근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중국 샤오미의 베이징 전기차(EV) 공장은 공상과학(SF) 영화의 한 장면과 다를 바 없었다.

샤오미뿐 아니다. 현대차가 지난 3월 준공한 미국 조지아 공장에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두 마리가 현장을 돌아다니며 차체를 점검했다. 2022년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한 테슬라는 한발 앞서간다. 옵티머스 로봇이 테슬라를 몰고 나가 무인 택배 배달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산재와의 전쟁, 공장 무인화 촉진

이런 장면이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 건 같은 시기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과 묘하게 대비됐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회적 타살과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심한 듯 A4 용지를 쥐고 발언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안전사고를 방지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처벌 중심의 고강도 규제책이 쏟아지면 기업들은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 산재를 줄일 해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사람 대신 로봇을 사용해 공장을 무인화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산재를 원천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도 늘릴 수 있다.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를 요구하는 근로자와 달리 24시간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속성상 언제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래서 현장의 기업인들은 “선의로 시작된 산재와의 전쟁이 제조업 분야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최저임금 인상이 무인 주유소와 키오스크 확산을 부른 전례와 궤를 같이한다는 설명이다.

'AI 강국' 뒷받침하는 제도 필요

이런 거대한 물결은 제조 현장에 그치지 않는다. 은행원, 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 광범위한 전문직 일자리도 위협하고 있다. 지난 6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개한 인공지능 의사 ‘MAI-DxO’의 진단 정확도는 85.5%로 의사 21명의 평균보다 네 배 높았다. 영국에선 5월부터 AI 로펌이 법률 자문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AI와 로봇 확산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산재 예방, 근로 시간 단축, 정년 연장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거처야 할 통과의례일 수 있다. 총론에 동의하더라도 각론을 정할 땐 산업의 변화, 기술의 혁신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특히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도 대통령이 나서 너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 부작용을 초래할 제도가 성급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20년 전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은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의 대변혁”이라고 경고했다. ‘AI 3대 강국’을 꿈꾸는 이재명 정부가 고민해야 할 제도는 규제 위주의 단기 대책이 아니라 변화하는 산업 구조와 기술 혁신에 어울리는 사회 시스템이다. 공장에 남은 불빛이 산업의 희망이 될지, 노동 종말의 전조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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