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하다 못해 질긴 빵… 물렁하면 베이글이 아니다[이용재의 식사의 窓]

9 hours ago 2

이용재 음식평론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베이글 카페 ‘런던베이글뮤지엄’(이하 런베뮤)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에 매각됐다. 3000억 매각설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매각 금액은 2000억 원대다. 서민은 감히 상상도 못할 매각가이지만, 다들 적정 여부를 따진다. 에비타(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를 기준 삼아 곱셈을 해가며 설왕설래 중이다.

그런데 아무도 핵심인 베이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늘 이런 식이다. 사업체이므로 당연히 경제와 사업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하지만 제품, 특히 음식을 파는 가게인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에 대한 품질이나 완성도는 아예 논외로 친다. 음식평론가는 이런 현실이 매우 못마땅하다. 사업적 측면만 따지느라 본질인 맛이 묻히기 때문이다.

사실 런베뮤의 매각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음식을 파는 사업체라면 그들이 파는 음식의 품질과 완성도, 맛이 좋아야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런베뮤의 가치를 높게 치지 않는다. 사실 런베뮤의 베이글을 먹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렁하고 덜 구운 빵을 베이글이라며 판매하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베이글의 역사는 14세기 독일을 거쳐 폴란드로 유입됐다는 설과 17세기에 오스트리아를 거쳐 폴란드로 유입됐다는 설 2가지로 나뉜다. 폴란드는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차별이 덜해 유대인들이 많이 정착했다. 이들 상당수는 베이글을 구워 팔아 생계를 해결했다. 그렇게 베이글이 유대인의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자 폴란드에서도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베이글에 독이라도 넣을까 경계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우려를 안심시키기 위해 반죽을 굽기 전 삶는 살균 처리 과정을 도입했다. 2차 발효까지 끝난 반죽을 물에 삶으면 겉이 먼저 익는다. 이는 오븐에 구울 때 많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 보니 베이글은 쫄깃하다 못해 유난히 질긴 빵으로 자리를 잡았다. 베이글은 19세기 이후 유대인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에는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공장에선 생산성 향상을 위해 차선으로 베이글에 수증기를 쐬어 표면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베이글은 쫄깃해야 제맛인데 런베뮤의 제품은 무르고 씹는 맛이 없다.

굳이 정석을 따지자면 베이글은 표면이 빛나고 색깔과 맛도 진하다. 반죽을 물에 삶지 않은 빵을 베이글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소금에 절여 젓갈에 무친 채소도 발효를 시키면 김치, 아니면 겉절이라 엄격하게 구분한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엄격함을 한식이 외국에 진출할 때만 적용한다. 온 세계가 우리의 전통을 제대로 알아주기 바라는 반면, 외국 음식이 유입되면 ‘우리 입맛’을 들먹이며 귤을 탱자로 전락시킨다.

K푸드가 해외에서 사랑받는 시대다. 존중받고 싶은 만큼 존중해야 마땅한데 우리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다. 전통적으로 삶아 만들었다면, 그 공정이 맛과 질감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이라면 준수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베이글이라 일컬을 자격이 있다. 런베뮤가 엄청난 액수에 사모펀드에 팔렸으니 K푸드의 새 선봉장 노릇이라도 할까 솔직히 두렵다. 물렁한 베이글은 베이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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