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칠 거면 골프백 빼라.”
한국의 주니어 선수, 혹은 나이 어린 프로가 부모님이나 코치에게서 한 번은 들어봤을 말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 자극을 주기 위해 한 말일 테지만 듣는 사람으로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거면 아예 그만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자리 잡을 수 있다.
지난달 한국여자오픈에서 발생한 대거 기권 사태는 선수들에게 이 같은 생각이 녹아 있음을 보여준다. 1, 2라운드에 참가한 선수는 132명. 이 중 10%가 넘는 14명이 중도 포기했는데, 대부분 하위권 선수였다. 까다로운 코스와 무더운 날씨 때문에 반격보다는 일찌감치 포기를 선택한 것이다.
같은 시기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는 조던 스피스(미국)의 기권이 화제가 됐다. 지난달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 1라운드 도중 목 통증으로 기권했는데, 자신의 PGA투어 13번째 시즌 동안 처음 한 기권인 것으로 확인됐다. 스피스는 대회 전 시작된 목 통증이 경기 중에 더 심해지자 1라운드 12번홀을 마친 뒤 경기위원을 불러 기권 의사를 밝혔다.
PGA투어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20개 이상의 대회를 소화한다. 수많은 연습과 시합 출전으로 체력이 소진되고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은 운동선수의 숙명이다. 전 세계랭킹 1위 스피스가 13년간 297개 경기를 치르며 단 한 번도 기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스피스는 19세에 존디어클래식에서 우승하며 회원 자격을 따냈고, 21세이던 2015년 메이저대회에서만 2승을 거두며 ‘골든보이’란 별명을 얻었다. 2017년 디오픈까지 거머쥐고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한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골프 팬은 그를 골든보이라고 부르며 큰 사랑을 보낸다. 성에 차지 않는 상황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스피스는 2주간 휴식한 뒤 디오픈으로 필드에 복귀해 공동 40위로 대회를 마쳤다.
강혜원 KLPGA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