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 3사를 상대로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과도한 마케팅으로 시장이 혼탁해지는 것을 막으라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지도’에 따라 번호이동 마케팅을 자제했을 뿐인데 공정위가 이를 담합으로 최종 판단해서다. 번호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통신사의 각종 혜택이 줄어들어 소비자가 피해를 봤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통신 3사는 글로벌 빅테크와 인공지능(AI) 경쟁을 해야 하는 마당에 재원을 과징금에 쏟아부으라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역대 최대 과징금 때린 공정위
공정위는 12일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를 상대로 과징금 총 1140억원(잠정)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역대 통신 3사에 매긴 공정위 과징금을 통틀어 최대 규모다. 대리점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을 서로 공유하고 조정해 7년간 번호이동 가입자 수를 맞추면서 담합 행위를 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통신 3사는 약 한 달 뒤 최종 의결을 거치는 대로 과징금을 즉각 내야 한다. 과징금은 매출 기준으로 산정해 SK텔레콤이 426억원으로 가장 많다. LG유플러스와 KT엔 각각 383억원, 330억원이 부과됐다. 통신 3사는 이날 공정위 제재와 관련해 일제히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결서를 받는 대로 행정소송 등 강도 높게 대응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통신 3사가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번호이동 신규 가입이 특정 사업자에게 몰리지 않도록 합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판단했다. 이 기간 통신 3사가 서울 서초구 오피스텔에 상주하면서 ‘시장상황반’을 운영했다는 것이다. 번호이동 순증감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차이가 벌어지면 판매장려금 가격을 조정하는 식으로 수치를 비슷하게 맞추는 식이었다. 문재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담합으로 번호이동 순증감 변동폭과 번호이동 건수가 대폭 감소하는 등 가입자 유치 경쟁이 제한됐다”고 말했다.
통신 3사는 공정위 조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시 시장상황반 운영은 단통법 시행 과정에서 벌어진 특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단통법은 휴대폰 단말기 지원금 상한을 제한하는 제도로 2014년 제정됐다. 방통위는 단통법 시행 후 판매장려금을 30만원 이내로 제한했다. 이를 준수하는 과정에서 운영된 게 시장상황반이다.
◇단통법 준수했더니 ‘날벼락’
특히 번호이동 판매장려금을 줄인 데엔 단통법 준수 및 시장과열 방지라는 정부 지침이 있었다는 게 통신사의 핵심 주장이다. 통신사 관계자는 “방통위로부터 장려금 인하 또는 번호이동 순증감 조정 지시를 받았다”며 “방통위 담당자가 번호이동 순증감을 지시한 근거가 다수 있음에도 공정위 심사보고서엔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규제기관 간 규제 충돌로 불합리한 제재 처분을 받는 것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통신 3사가 담합으로 이용자 혜택을 줄인 결과 이용자의 번호이동이 줄었다’는 공정위 해석에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 통신사의 하소연이다. 통신업체 관계자는 “당시 번호이동이 줄어든 데엔 국내 단말기 가격이 해외와 달리 갈수록 상승했고 선택약정 증가, 결합상품 확장 등 다른 요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신 3사는 신규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정부의 요금제 인하 요구 등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마당에 정부의 ‘오락가락’ 규제 잣대에 수백억원씩 과징금 리스크까지 떠안게 되면서다. 통신사 고위 관계자는 “AI 신사업 투자 등에 들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AI 시대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데 정부에 손발이 묶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다만 통신사가 행정소송에 들어가더라도 ‘긴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과징금을 부과한 뒤 소송이 진행되는 구조여서다. 소송에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느냐도 미지수다.
하지은/정지은/김대훈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