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누가 청년의 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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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 칼럼] 누가 청년의 敵인가

광장은 분노와 심판의 열기가 들끓는 공간이다. 본래 청년들은 쟁취와 해방의 좌파 광장에 있었다. 지난 50년간 거리 민주화 운동의 전위부대였다. 그들에겐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명분과 열망이 있었다. 어느덧 세상이 바뀌어 2030 청년들의 우파 광장 진입이 시작됐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변화다. 극우라는 폄하는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이 현상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우파 유튜버의 극성스런 세례를 받았다는 분석도 편향적이다. 정치 유튜브 열풍이 한두 해의 일도 아니고 그 수준이 갑자기 고양된 것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에 결집한 청년들은 기존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학교와 직장과 집을 오가면서 차분한 일상을 영위하던 젊은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는 수치를 보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부터 구속에 이르는 40여 일 사이에 줄잡아 백만 명 정도의 2030 청년이 보수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된다. 무소불위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발심도 작용했겠지만, 순전히 정치적 요인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한국 청년들은 유사 이래 가장 스마트하다. 일개 유튜버가 속여넘길 정도의 지적 수준이 아니다. 디지털 문명에 최적화돼 있고, 혼자 힘으로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해외 주식 투자를 통해 바깥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정통하다. 엔비디아와 테슬라와 TSMC와 삼성전자 주가를 종주하며 첨단산업의 동향과 미래 기술 지형 변화를 꿰뚫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 기업과 산업이 어떻게 해야 존속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여러 복합적 요인 속에서도 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이유는 나라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제 막 진입한 경로에 있다. 독립을 이뤄야 하지만 학교나 직장에서의 꿈이 확실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신념도 덜 여물었다. 창창하게 남은 삶은 텅 빈 도화지 같은 것이며, 오랜 세월 꿈과 희망을 펼쳐나갈 곳은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이다.

그들은 바로 그 대한민국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고 그것이 자신들의 미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청년들이 보는 국가적 위기의 근원은 한마디로 정치가 너무 허접하고 퇴행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중국 등을 필두로 전 세계가 격변기를 맞았는데, 우리나라만 구한말의 미몽 같은 갈등과 분열, 방향 착오에 빠져 허둥대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나라에서 부족한 은행 잔고를 채워 집을 사고, 착실히 노력하면 반듯한 기반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청년들은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기감을 보수화라는 프레임에 가둘 수는 없다. 그런 주장은 의도적 조리돌림이거나 젊은이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결례다. 비상계엄이라는 악재에도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우경화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본능의 발로일 뿐이다. 청년들은 대통령 권력과 국회 권력 간 투쟁에서 완승을 거둔 국회 권력의 실체를 의심하고 있다. 행정·사법부에 대한 월권과 입법 독재, 탄핵이 일상화된 권력 다툼, 바깥세상의 변화와 혁신에 눈과 귀를 닫은 이념적 지향에 넌덜머리를 낸다. 나랏빚을 내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나눠주자는 주장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나중에 돈 갚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누가 내 돈으로 생색을 내느냐고 따진다.

그들도 앞선 세대와 마찬가지로 미래 생존과 번영을 갈구한다. 과연 어떤 체제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난세가 이런 각성을 조기에 몰고 왔다. 좌우를 가르는 정치 논법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많은 청년이 우파 광장을 선택한 것은 상대적인 것이며 항구적이지도 않다. 또 다른 상황에서 나라가 위태롭다고 생각하면 반대편 광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투명 종이도 여러 장 포개면 이윽고 점과 선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처럼, 청년들의 우파 광장 합류는 세대적 특성과 안팎의 정세를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해로운 것은 우리에게도 해롭다. 청년의 적은 누구인가.” 기성세대가 온갖 구호와 백병전으로 맞서온 광장 전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진짜 체제 경쟁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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