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내년도 사업계획은 오리무중이다. 한 해도 쉽게 넘어간 적이 없지만 올가을은 유난히 괴롭고 막막하다. 울산과 포항, 여수 산단의 불 꺼진 공장 너머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 제조업의 의기양양한 진격과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로봇의 현란한 변주를 보면서 한숨을 쉰다. 외롭고 불안하다. 공단 인근 밥집과 노래방의 맥 빠진 상인들, 얇아진 월급봉투를 받아 든 근로자들의 한숨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기업 바깥의 시간은 무심히 흐른다. 얼핏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맛집엔 언제나 삼삼오오 청춘들의 긴 줄이 늘어서고 인천공항은 사상 최대 여행객들로 분주하다. 누군가 위기를 말하고 앞날의 위태로움을 얘기하지만, 각자의 천국과 각자의 지옥을 사는 사람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지난 한 해만 3만 개의 제조업체가 사라졌다. “인간도 하나의 우주”라는 생명의 존귀함으로 보자면 한때 누군가의 고용과 생계를 책임지며 별처럼 빛나던 기업들이었다. 자영업은 무려 100만 곳이 문을 닫았다. 일자리 없는 사람들이 부나방처럼 뛰어들고 퇴출당하는 악순환이 펼쳐진다.
많은 전문가가 높은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지목한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저임금 수준의 근로자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새벽배송 젊은 쿠팡맨들의 고단함을 생각해보라. 그렇게 밤새워 배달을 하면 나중에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그들에게 일자리를 위협받는 대형마트 근로자들도 모두 최저임금이다. 우리 경제 생산성은 왜 이렇게 낮은 것일까. 이 와중에 주 4.5일제를 걸고 총파업을 예고한 은행원들은 또 뭔가. 어마어마한 청년 실업을 목도하면서도 버젓이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자동차 노조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주가가 연일 튀어 오르고 있다. 코스피 4000 시대가 금방이라도 올 듯하다. 하지만 주가가 뛴다고 모두 좋은 기업인 것은 아니다. 순서가 거꾸로다. 반드시 좋은 기업이라야 투자자들이 이익을 본다. 우리는 그런 기업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나. 나아가 얼마나 더 키우고 확대할 수 있나. 눈 떠도 코 베어 가는 트럼프발 ‘마가(MAGA)’ 폭주를 보면서 던지는 이런 질문이 우리를 답답하고 심란하게 만든다. 흔들리는 수출전선 못지않게 투자와 고용의 숨통을 죄어오는 상법과 노조법의 침탈도 그렇다. 대통령은 친기업, 친노동, 친투자자를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다고 믿는 눈치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세상만사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기에 굳이 초를 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더 이상의 규제법령은 곤란하고 민망하다. 여차하면 기업을 벌줄 수 있다는 분위기는 성장, 투자, 고용, 배당, 주가 모두에 이롭지 않다.
대만 반도체의 한국 추월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삼성전자에 철벽을 친 TSMC의 위용도 그렇다. 10년 전만 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나라와 기업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아성은 미치도록 부럽다. 역시 10년 전에는 전자산업의 변방이었다. 그즈음,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기차가 알파고 쇼크를 주며 진즉에 굉음을 내고 출발했건만, 우리는 둔감했다. 비슷한 시기, 내연기관으로는 아시아와 유럽 맹장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한 중국은 전기자동차에 승부수를 던졌다. ‘구덩이는 뛰어서 건너라’는 중국 속담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찌 후회와 자책만 있으랴. 손바닥을 바로 눈앞에 갖다 대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아이들처럼 손바닥 놀이를 할 수는 없다. 불안과 불확실성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짙은 안개와 깊은 해저드를 지나면서도 길을 만들고 방향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눈높이는 여전히 높다. 제조 서비스 디자인 콘텐츠 모두 세계적이다. 모두 힘들다고 아우성인 지금이야말로 벤처정신이 필요하다. 내년도 사업계획은 보수적으로 짜지 말기를 권한다. 폭염과 열대야가 물러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지만 우리의 생존과 번영은 예비된 것이 아니다. 약속의 땅, 약속의 시간은 없다. 피할 수 없는 그 근원적 숙명이 기업인 가슴을 또다시 뛰게 만들 것이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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