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감독, 아픈 문동주 기다리고 흔들린 김서현 격려해 마운드 재건
감독·단장 역임한 양상문 코치, 명확한 철학으로 투수진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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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제공. 재배포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백전노장' 김경문(66) 한화 이글스 감독과 양상문(64) 한화 투수 코치가 프로야구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1990년대부터 지도자 생활을 한 두 거목은 '만년 꼴찌' 한화를 돌풍의 팀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한화는 7일 삼성 라이온즈와 홈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20년 만에 9연승을 내달리며 단독 1위에 올랐다.
한화가 정규시즌 30경기 이상 치른 시점에서 단독 선두에 오른 건 2007년 6월 2일 이후 약 18년 만이다.
매년 최하위권에 머물던 한화가 달라진 건 마운드 전력 덕분이다.
한화는 선발 문동주(21), 마무리 김서현(20), 필승조 조동욱(20), 정우주(18) 등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투수력을 끌어올렸다.
한화의 올 시즌 팀 평균자책점은 3.16(2위)이고, 9연승 기간엔 무려 1.95를 기록했다.
지난해 부진했던 문동주는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고, 2군에 주로 몸담았던 김서현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성장했다.
지난해 평균자책점 6.37을 기록한 2년 차 불펜 조동욱은 올 시즌 14경기에서 2.77의 평균자책점을 찍고 있다.
한화 마운드가 변신한 중심엔 김 감독과 양 코치의 노력이 숨어있다.
두 지도자는 오랜 세월 쌓인 경륜과 철학을 바탕으로 자녀들보다도 어린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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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한화 김경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며 코치진과 대화하고 있다. 2025.3.26 nowwego@yna.co.kr
◇ 뚝심 있는 김경문 감독…문동주는 기다리고 김서현은 격려했다
리그 대표 마무리 투수로 성장한 김서현은 김경문 감독의 작품이다.
김경문 감독은 지난해 7월 제구 문제로 1, 2군을 오가던 김서현에게 직접 전화해 "잘하고 있으니 투구 폼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감 있게 던져라"라고 격려했다.
당시 제구 난조를 해결하기 위해 팔 각도를 이리저리 바꾸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했던 김서현은 조급한 마음을 씻어냈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들과 거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다. 선수들을 사적인 감정으로 대하면 냉철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철학에서다.
그래서 김 감독은 선수들의 결혼식에도 잘 참석하지 않는다.
김 감독이 이례적으로 김서현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그가 해당 시기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김 감독의 조언에 따라 투구폼 수정을 중단한 김서현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 초반 기존 마무리 투수 주현상이 흔들리자 과감하게 김서현을 마무리 투수로 활용했다.
김서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새 마무리 투수 김서현은 21경기에서 1패 1홀드, 11세이브, 평균자책점 0.46을 기록 중이다.
리그 최다 세이브 1위이고, 올 시즌 15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다.
차세대 에이스 문동주의 부활 과정엔 김경문 감독의 '기다림'이 녹아있다.
차세대 에이스로 꼽히던 문동주는 지난해 어깨 통증으로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어깨는 투수 생명과 직결된 부위라 9월 초에 2024시즌을 접었다.
문동주는 휴식을 취하며 빠르게 회복했다. 그는 지난 1월 스프링캠프 출국길에서 "어깨 상태는 100%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문동주를 무리하게 훈련 시키지 않았다.
개막 후에도 그랬다. 문동주는 불과 지난달 초까지 한 경기에서 70구 이상을 던지지 않았다.
한화는 4월 초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었으나 김 감독은 먼 곳을 바라봤다.
뚝심 있게 선수를 기다렸고, 완벽한 상황이 만들어질 때까지 인내했다.
문동주는 지난 달 13일 키움 히어로즈전부터 이달 7일 삼성 라이온즈전까지 4경기에서 모두 승리 투수가 됐다.
올 시즌 성적은 4승 1패, 평균자책점 3.03으로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흐름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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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상문 투수 코치의 불가근불가원 원칙…"현세대, 주입하는 세대 아니다"
양상문 투수 코치도 한화 마운드 재건에 큰 몫을 했다.
롯데 자이언츠 감독, LG 트윈스 감독, LG 단장 등을 역임한 양 코치는 김경문 감독 못지않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지도자다.
구단이 좋은 마운드 전력을 갖췄을 때,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올 시즌 한화는 투수들의 연투를 철저하게 막는다.
마무리 김서현은 올 시즌 단 한 차례를 빼면 3연투를 한 적이 없다.
한승혁, 김종수, 박상원 등 핵심 불펜들도 3일 연속 마운드에 오른 적이 없다.
양상문 투수 코치는 7일 통화에서 "감독님은 이틀 던진 투수에게 무조건 휴식을 주려고 한다"며 "당장의 1승도 중요하지만, 페넌트레이스는 장기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1군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들은 모두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라며 "골고루 등판 기회를 줘야 투구 감각을 이어가면서 막아낼 수 있기에 기회 배분 차원에서도 무리한 3연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양 코치는 선수들과 적절하게 거리도 두고 있다.
투수 코치는 감독과는 다르게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고 지시를 내려야 하는 위치다.
그러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철학으로 선수들의 깊숙한 곳을 침범하지 않는다.
양상문 코치는 "지금 선수들은 예전 세대 선수들과 다르다. 주입하고 시키는 세대가 아니다"라며 "다만 선수들이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 정확한 답변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선수들은 잔소리라고 여기지 않고 조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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