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사고 안 나는 길로만 다녔다…한국 자율주행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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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선 무인 로보택시가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한국은 보여주기식 시범 운행만 반복하고 있어요.” 지난 11일 만난 김영기 한국공학한림원 자율주행위원장의 표정은 절실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부문 사장 출신인 그는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한국의 자율주행산업은 기회를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학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산업·학계 전문가가 모인 비영리 단체 공학한림원은 2021년 자율주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동차, 도로, 법률, 통신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한국 자율주행산업 도약에 필요한 전략을 집중 연구해왔다. 그사이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김 위원장은 “연구를 통해 전략을 짜는 동안 한국의 자율주행은 배우는 것도 없이 절대 사고 안 나는 길로만 다녔다”며 “새로운 자율주행 인프라 서비스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해야 활로가 뚫릴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사고 안 나는 길로만 다녔다…한국 자율주행의 민낯

공학한림원이 제시한 돌파구는 ‘드라이빙 서비스 프로바이더’(DSP·주행 사업자) 제도 도입이다. DSP는 자율주행 기술 업체와는 별개로 주행 시 실시간 관제와 인프라 구축, 기술 인증을 담당하는 서비스 사업자다. 공학한림원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4년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이다. 김 위원장은 “기술 기업이 하기 어려운 주행 인프라 구축과 안전 책임까지 맡아주는 새로운 서비스 시장이 필요하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DSP는 휴대폰 시장의 이동통신 사업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드웨어는 삼성전자 등이 생산하고 통화를 위한 인프라는 KT 같은 통신사업자가 맡는 식이다. 자동차 전용 통신망 사업과 교통 인프라 설치 및 운영권을 받아 자율주행에 필요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김 위원장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내 차량 공유 서비스 점유율 그래프를 제시했다. 2023년만 해도 존재감이 없던 구글의 무인 로보택시 웨이모는 지난해 11월 전체 차량 공유 시장에서 점유율이 22%에 달했다. 그는 “법적 이슈로 한국이 뒤처진 사이 해외에선 자율주행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도 자율주행 법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법을 제정한 영국, 주행 기술감독자를 규정한 독일이 대표 사례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자율주행 제도 구축 논의가 사실상 멈춰 있다. 레벨3 이상 자율주행차는 시험을 위한 임시 운행만 가능하다. 대부분 시범 운행에서 보조 운전자 탑승이 필요하고, 주행 가능한 도로도 특정 노선으로 제한돼 있다. 국내 자율주행 누적 운행 거리 1위 업체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운행 거리는 50만㎞ 수준으로 중국 바이두(1억1000만㎞)의 220분의 1에 불과하다.

공학한림원은 DSP 제도가 국내 자율주행산업의 상용화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자율주행 기술 기업이 관제까지 담당하고 있는데 사고와 정체 등 복잡한 상황까지 이들 기업이 다루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DSP 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기술 기업도 적극적으로 사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 제조기업부터 운송 서비스업체, 이동통신사 등이 DSP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 도로망, 무선네트워크 등 자율주행 인프라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위원회는 진단했다. 공학한림원은 DSP 추진 협의회를 꾸려 법제화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DSP(주행사업자)

자율주행 차량의 실시간 관제, 주행 인프라 운영, 최적화 및 검증을 담당하는 사업자. ‘주행’이라는 새로운 서비스 시장을 열어가는 역할을 한다.

고은이/안정훈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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