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개정 약사법 시행과 함께 우리나라 의약품 자료보호제도가 새롭게 출범했다. 자료보호제도는 의약품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한 임상시험 자료를 원 제출자 이외의 다른 사람이 품목허가에 일정 기간(자료보호기간) 동안 사용할 수 없도록 해 지식재산을 보호하는 정책 수단이자, 연구개발(R&D) 투자의 가치를 지키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한 제도다. 그러나 제도의 성패는 단순히 규정을 마련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제약업계 모두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춰 충실히 운영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에 본 칼럼은 식약처와 제약업계를 대상으로 자료보호제도의 올바른 정착을 위한 실무적 당부사항을 제안하고자 한다.
식약처, ‘명확성과 투명성 확보’ 추진할 때
먼저, 자료보호 대상 선정 기준의 명확화가 필요하다. 자료보호 적용 여부는 ‘임상시험자료의 신규성’과 ‘허가 필수성’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식약처는 이 두 요건에 대한 자의적 해석 여지를 없애기 위해 명확한 판단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 기업이 허가 전략 수립 초기 단계부터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희귀의약품 변경이나 개량신약 심사와 같이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큰 사안은 선제적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혼란을 줄여야 한다.
아울러 심사 과정의 일관성 또한 제도 신뢰를 위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자료보호 인정 여부는 신약 개발 전략에 직결되는 핵심 사안이다. 식약처는 사전 컨설팅 제도를 활성화하고, 심사자 간 판단 차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내부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사전 상담 결과에 대해 서면 확인서를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해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자료보호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제약사 간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의 기반이 될 것이다. 보호 대상 품목의 제품명, 자료보호기간, 제조(영업)소의 명칭, 효능·효과 등을 식약처 공식 홈페이지(의약품안전나라) 등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이는 제약사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자료보호 목록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변경 사항을 신속히 반영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제약사, 진정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제약사 역시 개발 초기 단계부터 임상시험자료의 ‘신규성’과 ‘허가 필수성’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자체 검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임상시험자료가 기존 자료를 단순 재활용하거나 인용한 것이 아님을 제약사가 스스로 철저히 검증하는 내부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임상개발 단계부터 자료보호 적용 가능성 검토를 위한 별도 절차를 마련하고, 허가 전략과 연계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신규성을 입증할 수 없는 자료에 대해 무리하게 보호를 요구하는 관행은 지양해야 한다.
자료보호제도는 시장 독점 수단이 아닌, 환자 중심 가치를 높이는 계기다. 자료보호를 시장 독점 수단으로만 활용할 경우 장기적으로 업계의 신뢰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호기간 동안 제약사는 추가 적응증 확대, 장기 투여 연구, 환자 편의성 개선 제형 개발 등 신뢰성 높은 후속 연구를 적극 추진해 환자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보호기간 종료 이후를 내다보는 중장기 전략 수립도 간과돼선 안 된다. 보호기간 만료 이후를 대비해 제약사는 후속 파이프라인 확보, 기존 제품의 제형 개선, 글로벌 시장 확장 등 지속 가능한 사업 전략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 도입하고, 외부 기술 도입과 협업을 통해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사전 협의’로 분쟁은 줄이고, 남용은 철저히 차단해야
사전 협의 절차를 활성화하면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 희귀의약품 변경, 소아 적응증 추가, 개량신약 개발 등과 같은 사안에서는 해석 차이에 따라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사전 협의 절차를 적극 활용하고, 질의응답(Q&A) 시스템을 통해 투명하고 신속한 소통을 추진해야 한다. 필요 시 민원인 안내서 개정 등을 통해 제도 운영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제도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경미한 개선을 빌미로 부당하게 보호기간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엄격히 차단해야 한다. 식약처는 심사를 강화하고, 제약업계는 자율적 윤리 기준을 제정해 스스로 남용을 방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부당한 연장 시도는 단순한 법규 위반을 넘어 산업 전체의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 운영의 정교화도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료보호제도는 EU,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제도와 유사한 수준으로 정비되었다. 글로벌 허가 전략을 추진하는 제약사는 국내 자료보호 인정 범위를 미국 특허-자료보호제도(Hatch-Waxman Act)나 EU의 8+2+1 규칙 등과 면밀히 비교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염두에 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식약처도 국제조화를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해외 규제 당국과의 협력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
의약춤 자료포호제고, 이익보다 책임으로 운영할 때
의약품 자료보호제도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바이오헬스 산업의 혁신적 성장을 견인하는 촉진제다.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식약처의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제약업계는 윤리적 책임 이행을 강화하고, 양측은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바이오헬스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자료보호제도를 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수단이 아닌, 국민 건강과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위한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운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식약처와 제약업계 모두가 열린 자세로 지속적 개선과 상호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글로벌 바이오헬스 산업을 선도하는 국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권동주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 대법원 지식재산권조 재판연구관, 서울 고등법원 고법판사, 특허법원 제1호 고법판사를 역임했다. 오랜 재판실무경험을 통해 법적 분쟁의 공격방어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법률적으로 확실하게 뒷받침하여 승소를 이끌어내고 있다. 메디톡스를 대리하여 17전 16승의 전무후무한 실적을 거두는 등 국내 지식재산권 및 바이오헬스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