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취약계층 장애인, ‘친절한 정책’이 필요하다[기고/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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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장애인복지는 1981년 유엔의 ‘장애인의 해’ 선포와 함께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당시 유엔이 군사정권 아래 인권후진국이던 한국에 여러 준수사항을 제시하면서 정부가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지정하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시작됐다. 1988년 서울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존재’로 인정한 출발점이다. 그전까지 상당수 가정에서는 장애인 자녀를 집밖에 내보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장애인 선수들이 잠실올림픽경기장을 달리고 역기를 들어올리며 금메달을 목에 걸자 국민 인식이 달라졌다.

이후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1990년대 소득, 의료, 고용 및 교육 등 전반적인 장애인복지의 틀을 갖췄다.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하는 등록 장애 유형은 총 15개다. 2000년 이전에는 지체장애, 시각장애 등 외부 신체 기능 중심의 장애만 등록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심장, 호흡기 등 내부장애로 인정 범위가 확대됐다. 이러한 변화는 장애를 좁게 보지 않고 다양한 유형을 포괄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을 뜻한다.​

서울 패럴림픽 이후 37년이 흘렀다. 그렇다면 이제 장애인복지는 ‘성년’이 됐을까? 지난달 영남권을 할퀸 대형 산불 피해로 눈을 돌려보자. 이 불행한 사태에서 대부분의 희생자는 노인과 장애인으로 알려졌는데, 재난문자의 즉각적인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의 대부분은 아마도 노인성 장애를 가졌을 것이다.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연령 분포는 65세 이상이 54.3%로, 3년 전에 비해 4.4%포인트 증가했다.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우리 사회에 장애 노인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신체적으로 불편한 일상을 맞는다. 재난 상황에서 이들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선진국이다. 일본의 경우 재해 경보를 5단계로 나눠 3단계에 들어서면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먼저 대피시킨다. 이번 산불 당시 외국인 노동자가 노인들을 업고 뛰어 화마의 위험에서 구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 뉴스는 미담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가 재난 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는 시스템과 대피 메뉴얼이 진작에 있어야 했다.

재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일부는 재난문자로 안내받은 장소까지 이동하기 어려워 대피를 포기하고, 청각과 시각장애인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재난문자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다양한 장애 유형의 특성에 맞춘 세심한 정책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재난 관련 정보와 지원 서비스 접근이 제한적이어서 대피나 지원 요청이 늦어지고 피해가 증폭되면 복구에도 많은 비용이 들어 상황이 어려워진다. 우선 안전해야 그 다음에 복지도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재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안전망과 이를 위한 행정서비스는 견고하면서도 친절해야 한다. 약자의 눈높이에 맞춘 사회시스템, 그 혜택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나, 그리고 이제 막 문자를 알아가기 시작한 어린 자녀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의 기후재앙은 대상을 가리지 않을테니 당장 지금의 나와도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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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장애인스포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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