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캄보디아 만삭 아내 교통사고 사망사건, 풀리지 않은 의혹들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로서 수많은 사건을 다루며 알게 된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교통사고는 '완벽한 범죄'를 위한 손쉬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매년 20만 건이 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는데, 그 중 극히 일부는 '사고'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의도적 범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거액의 보험금이 걸려있을 때 교통사고는 더욱 의혹을 낳습니다.
2014년 발생한 '캄보디아 만삭 아내 교통사고 사망 사건'은 이러한 의혹의 정점에 서 있는 사건입니다.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고, 민사재판에서는 100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수령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았습니다.
2014년 8월 23일 새벽,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운전자 이 모 씨의 임신 7개월 차 캄보디아 출신 아내가 사망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졸음운전으로 인한 비극적 사고였지만, 사망한 아내 명의로 가입된 95억 원에 달하는 생명보험 계약이 발견되면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갓길에 정차된 화물차를 추돌한 사고에서 운전자는 갈비뼈 골절의 부상을 입었지만, 조수석의 아내는 사망했습니다. 더구나 아내는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있었으며, 혈액에서는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왜 사고 직전 상향등을 켰는가? CCTV 영상에 따르면 충돌 직전 상향등이 켜졌는데 졸음운전 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는 행동입니다. 왜 아내만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는가? 평소 안전벨트를 잘 착용하던 아내가 왜 이날만 착용하지 않았을까? 수면유도제는 누가 투여했는가? 아내의 혈액에서 검출된 수면유도제를 남편이 투여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렇다면 아내가 스스로 복용했단 말인가? 전업주부인 아내의 보험금 95억 원이 합리적인가? 등 무수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살인혐의에 대해 1심 무죄, 2심 무기징역, 대법원은 2021년 3월 이 씨에 대해 살인 혐의 무죄, 과실 교통사고로 판단, 최종 확정했습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살인 혐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대법원 2017도1549 판결).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이 씨는 보험사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승소하여 원금 95억 원에 10년간 지연 이자까지 더해 100억 원이 넘는 보험금을 수령하고 있습니다. 형사재판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따라 진행되고, 민사재판은 보험사가 자기 약관의 면책사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이 두 축이 만나면, 이 사건과 같이 의혹이 짙어도 보험금이 지급되고 형사처벌은 피하게 됩니다.
보험업계의 구조적 맹점
2014년 이전, 우리나라 보험업계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각 보험사가 개별적으로 인수심사를 진행했기에 한 사람이 여러 보험사에 걸쳐 거액의 보험을 가입해도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캄보디아 사건의 피해자는 11개 보험사에 걸쳐 95억 원의 보험에 가입했었지만, 어느 보험사도 이 전체 그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금융당국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제정되고, 보험사 간 정보 공유 시스템을 강화했으며, 30억 원 이상의 고액 보험에 대한 특별 심사를 의무화했습니다.
동두천 암자 보험사기 사망 사건
흥미롭게도, 이와 유사한 패턴의 사건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2003년 동두천의 한 암자에서 발생한 보험사기 사망 사건입니다. 당시 대처승은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났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어져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습니다(대법원 2004도5493 판결). 그는 8억 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후 캄보디아로 도피했습니다.
그렇게 8년이 흐른 후, 보험사 직원의 제보로 제삼자가 아내로 위장해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더욱 극적인 것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대처승이 캄보디아에서 다친 발을 치료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체포된 것입니다. 결국 그는 보험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됐습니다. 살인 혐의는 이미 무죄가 확정되었기에(일사부재리 원칙), 보험사기로 결국 징역 7년형 선고가 확정됐습니다(대법원 2013도8391 판결). 이 사건은 법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이 다를 수 있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결국 드러난다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마치며: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보험사기 사건들은 형사법과 보험제도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형사 재판에서는 혐의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의 산을 넘어야 하고, 민사 재판에서는 보험사가 부정행위를 입증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이의 틈을 노린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도, 법은 의심만으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서 이 두 사건을 지켜보며 법의 역할과 한계를 절감합니다.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은 억울한 이를 보호하는 정의의 방패이지만, 때로는 진범에게 견고한 방패막이가 되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건은 이제 법적으로 종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두천 암자 사건이 8년 만에 진실을 드러낸 것처럼, 이 사건 역시 언젠가는 모든 의혹이 해소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동두천 암자의 대처승이 캄보디아 밀림에서 다친 발목 때문에 스스로 한국 땅을 밟았듯이, 숨겨진 진실도 언젠가는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